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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금융투자

[부동산] 0기 신도시의 등장, 택지개발촉진법

by Spacewizard 2026.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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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부는 정권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 무엇보다 필요했던 조치는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건설경기 침체를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이에 대규모 택지개발·주택공급을 담은 주택 500만호 건설을 발표하였는데, 11년(1981~1991년) 동안 주택 500만호를 공급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1980년 전국 주택수가 530만호 가량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실적인 정책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1980년 12월 500만호 건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정한 법이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이다.

 

택촉법은 공적주체(한국토지개발공사·대한주택공사)가 대규모 토지를 저렴하게 확보한 후 신속한 개발을 가능케 하였는데, 이는 도시계획에서 적용되는 19개의 법률이 규정한 결정·인허가·면허 등의 권한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2개의 공사는 도시계획구역 내 저렴한 녹지지역(녹지·농지)를 개발예정구역으로 지정·매수한 후, 용도를 주거지로의 변경하여 큰 이익을 남기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이전의 토지구획정리사업과 비교하면, 택촉법이 사업추진 이후의 개발이익을 공유화한 면도 있다.

 

택촉법으로 개발된 대표적인 지역으로는 개발제한구역 내의 개포지구·고덕지구·목동지구·상계지구·중계지구가 있는데, 택촉법의 첫 사례는 1981년 준공된 개포주공아파트였다. 이들 지역은 낮은 인구밀도로 인해 대규모 개발에 용이했을 뿐만 아니라, 비만 오면 물에 잠기는 상습침수구역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당시 양재천·안양천·중랑천 주변으로는 천변을 따라 판자촌이 늘어서 있었다. 1987년까지 택지개발을 통해 공급된 주택수가 176만호 가량이었다니, 전두한 정부의 주거안정 노력은 높이 산다.

 

갯펄에서 부촌으로 변한, 개포동

 

개포동(開浦洞) 대모산 아래 갯벌이 있던 자리로, 음변화(갯펄-개패-개포)가 지역명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제대로된 수리시설이 갖춰지지 않았던 과거의 개포는 거주·왕래가 거의 없던 공간이었다. ​1970년대 대규모 서민주거단지 공급을 목표로 한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하였으나, 이내 발생한 오일쇼크로 사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그러다 1980년 택지개발촉진법이 제정되면서, 정부 주도의 공영개발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개포동은 서민을 위한 주공아파트(5층 이하, 초소형)로 들어찼고, 다른 강남권과 달리 서민거주지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강북에 있던 명문고등학교들이 강남으로 이전했는데, 이렇게 형성된 강남8학군이 강남주택가격을 크게 올렸다. 개포택지지구 내로 경기여고·숙명여고·중동고가 이전하였고, 대치동 학원가도 가까이 위치하여 개포동 일대의 아파트가격도 크게 상승했다. ​하지만 초소형의 주공아파트가 주변의 생활인프라를 따라가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개포동 주공아파트는 1990년대 말부터 재건축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2003년까지는 재건축이 가능한 연한이 20년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울시가 재건축 연한을 늘리고 안전진단을 강화하게 되는데, 이는 당시 과열되던 개포동 재건축 논의를 진정시키기 위한 조치였다는 후문이 있다. 2024년 현재 거의 마무리되어 가는 개포동 재건축은 다음과 같다.

개포지구 재건축 단지명 [출처:리얼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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