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생들은 학생운동이라는 개념이 생소하겠지만, 1990년대 후반 학번만 하더라도 얼굴을 가린 이들이 교정에서 죽창 들고 다니는 모습을 한번씩을 봤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학생운동단체하면 다음의 명칭이 생각난다.
서대협
전대협
서총련
한총련
1987년 7월 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서대협)은 이한열 장례식 및 전국 학생연대조직 건설을 논의하기 위해 각 지역 총학생회장 회의를 개최했고, 이 자리에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을 만들기로 결의했다. 다음 달 8월 개최된 창립총회(충남대)에서 이인영(고려대 총학생회장, 서대협 의장)이 초대 전대협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전대협의 기치는 구국의 강철대오(강철과 같은 무리)였으며, 독재정권 하에서 비민주주의적 환경을 개선하려는 민주화 운동의 주체로 인식되었다. 전대협 의장 출신은 다음과 같다.
1기 의장(1987년, 고려대 이인영) : 대통령 선거참여 투쟁
2기 의장(1988년, 고려대 오영식) : 남북 학생회담 추진
3기 의장(1989년, 한양대 임종석) :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
4기 의장(1990년, 전남대 송갑석)
5기 의장(1991년, 한양대 김종식) : 남북청년학생해외통일대축전 참가 후 방북
6기 의장(1992년, 서울대 태재준)
1987년 전대협은 대통령 선거에서 비판적 지지 노선을 제시했는데, 이는 야권 단일후보(김대중)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면서도 군부독재 종식을 위해 선거투쟁에 동참하자는 전략이었다. 비록 선거결과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공정선거감시단 활동을 통해 선거부정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88년 5월 만들어진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은 지역적 기반에 활동하면서, 전대협과는 상호보완적으로 이념·운동노선을 공유했다.
민주화보다는 통일운동, 한총련
전대협의 노력으로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잡은 환경에서, 1993년 출범함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은 민주화운동보다는 통일운동(친북노선)에 매진하게 된다. 출범 초기에는 NL·PD와 자유주의적 성향을 포괄했지만, 1994년 주사파 파동(김일성 조문논쟁) 이후 주도권은 NL(강경파)로 넘어 갔다. 한총련의 초기 의장은 다음과 같다.
1기 의장(1993년, 한양대 김재용)
2기 의장(1994년, 부산대 김현준)
3기 의장(1995년, 고려대 정태흥)
4기 의장(1996년, 전남대 정명기)
5기 의장(1997년, 전남대 강위원)
6기 의장(1998년, 영남대 손준혁)
1996년 한총련은 연세대학교 교정에서 범민족대회를 주체하였는데, 강제해산을 시도하는 경찰과의 대치과정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시대착오적 이념(친북)로 인해 도태할 위기에 처한 한총련은 점차 과격한 폭력양상을 보였고, 이후에는 사실상 단일정파(강경NL)만 남게 되었다. 1997년 5월 전북대학교생을 사칭하던 이종권이 프락치로 의심을 받아 고문·구타로 사망하기도 했으며, 6월에는 제5기 출범식 행사가 예정된 한양대학교에서 이석(선반기능공)이 프락치로 의심을 받아 감금·폭행으로 사망했다.
국가보안법 상의 이적단체(利敵團體, 적을 이롭게 하는 단체)는 국가의 존립·안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선전·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단체를 말하며, 사법부가 형사판결로 규정하게 된다. 1998년 대법원은 한총련(5기)를 이적단체로 적시했으며, 2003년에도 한총련(10기)이 이적단체임을 재확인했다. 판결문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학생들의 순수한 뜻이 모아진 자치단체라고는 볼 수 없고, 현 정권의 타도와 연방제 통일방안 등을 주장하는 정치적 단체이고,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대남적화통일노선에 부합하는 폭력혁명노선을 채택함으로써 그 활동을 찬양·고무·선전하며 이에 동조하는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로서 국가보안법 제7조 소정의 이적단체라 할 것이다.
그 강령과 규약의 일부 변경에도 불구하고 제10기 역시 그 사상과 투쟁목표에 있어서 종전의 총학생회연합과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볼 수 없고, 그 지향하는 노선이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통일노선과 그 궤를 같이함으로써 북한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하거나 적어도 이에 동조하는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이적단체라고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외환위기 전후 사법부의 이적단체 낙인은 학생운동을 축소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2003년 이후에는 사실상 학생운동이 없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학생운동 주도자들이 20~30년 지난 시점에 현실정치에 등장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시된다고 보면, 전대협 멤버(이인영·임종석)의 뒤를 이어 한총련의 멤버들이 어떻게 활동할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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