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한국의 대학입시 제도는 다음과 같이 변화해 왔다.
1945~1953년 : 대학별 자체시험
1954~1968년(이승만) : 연합고사·본고사
1969~1981년(박정희) : 예비고사·본고사
1982~1993년(전두환) : 학력고사
1994~1997년 :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 도입기
해방 직후 각 대학은 자체시험을 통해 신입생을 선발했다. 1954년도(이승만 정부)부터 연합고사(국가 주관)와 본고사(대학 주관)가 병행되면서, 연합고사 합격자가 본고사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1969년도(박정희 정부)부터는 전국 대학입학예비고사 합격자를 대상으로, 각 대학에서 본고사를 치렀다.
1980년 신군부는 7.30 교육개혁으로 전형을 부분적으로 복합화했는데, 시행목적은 부정입학 방지, 사교육 억제, 중등교육 정상화였다. 1982년도(전두환 정부) 대학입학학력고사가 도입되면서, 학력고사 성적이 내신성적과 함께 주요 평가지표가 되었다. 학력고사과 내신 비중이 주로 7:3(내지 5:5)으로 반영되었다. 하지만 학력고사는 암기 위주라는 문제점이 있었다.
1994년도(김영삼 정부)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도입되었는데, 도입목적은 논리적·통합적 사고력 및 고등학교 교육 정상화였다. 수능점수와 내신을 합산해 대학에서 지원자를 선발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1993년 8월 첫 시행한 해에는 2차례(8월·11월) 시험을 치른 후, 더 좋은 성적을 선택할 수 있었다.
1995년 발표된 5.31 교육개혁에서 대학별 고사 금지와 새로운 내신제도가 도입되었고, 1996학년도 대입전형을 위한 고교내신 성적 처리지침을 통해 내신 반영 비율을 총점의 40% 이상으로 의무화했다. 내신 구성비율은 교과성적 80%, 출석성적 10%, 학교생활성적(특별활동·봉사) 10%로 정했다. 대학별로 수능·본고사를 60% 이내로 활용할 수 있게 하여 수능 중심에서 벗어난 내신병행체제로 전환되었다. 1997학년도 수능은 만점이 400점(기존 200점)으로 확대되고, 영어듣기평가가 강화되었다.
'역사·도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역사] 죽음은 정복하지 못했던, 진시황 (0) | 2026.05.01 |
|---|---|
| [역사] 조선 최상의 풍류, 담담정 (0) | 2026.03.03 |
| [역사] 정순왕후가 평생을 보낸, 숭인동 (0) | 2026.03.02 |
| [역사] 판결문의 평행이론, 내란 (0) | 2026.02.23 |
| [국가] 4번의 올림픽, 이탈리아 (0) | 2026.02.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