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KBS2TV 예능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슈돌)에서 혜림(원더걸스)의 친정집이 공개되었는데, 홍콩에 위치하고 있었다. 서울 출생인 혜림은 어린 시절 홍콩으로 건너가 학창시절을 보냈고, 여전히 부모는 홍콩에 거주 중이라고 한다. 공개된 홍콩집은 혜림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초고층 아파트로, 대형 정원과 수영장을 갖추고 있었다. 혜림의 발언 중에서 홍콩 집값이 30년 전보다 10배나 상승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아시아 외환위기(IMF) 당시 주택가격이 폭락했을 때 구입했었다고 한다.
역내 자유화가 이끈, 홍콩 집값
홍콩 아파트는 대체로 1997년 IMF 직전이 고점이었고, 이후 2003년 사스(SARS) 사태까지 주택가격이 50% 가량 폭락했었다. 이전 글 <나이가 들면서 실감나는, 독감>에서는 사람에게 유발하는 7개의 인간코로나바이러스(HCoV) 중에 2003년 유행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가 있다고 언급했었다. 하지만 이후 2008년 금융위기를 관통하면서 2010년 들어 13년 만에 전고점 수준으로 회복했다. 이후 2023년까지 13년 동안 주택가격이 평균적으로 3배 이상 상승한 것으로 보이는데, 2018년 국제통화기금(IMF)에서는 1997년 이후 홍콩의 주택가격이 3배 상승했다는 분석을 발표하기도 했다.
2010년대 홍콩의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던 배경에는 중국인과 중국자본이 자리잡고 있다. 2010년대 중반 홍콩으로의 자본통로가 확대되면서, 중국본토 투자자가 급증했던 것이다. 가뜩이나 토지공급이 제한된 섬에서 인구유입은 임대료·매매가격을 동반 상승시킬 수 밖에 없었다. 2010년대 중반에 중국은 홍콩으로의 자본 유입을 제도적으로 확대하는 다양한 정책을 펼쳤는데, CEPA가 대표적이다.
2003년 체결된 중국·홍콩 간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CEPA, Closer Economic Partnership Arrangement)은 자유화 단계 및 범위를 매년 확대해왔는데, 2014년 12월 CEPA 광둥-홍콩 간 서비스무역 자유화 합의가 발효되면서 153개 분야에서 실질적 개방이 이루어졌다. 이후 2015년 11월 중국·홍콩 간 CEPA 서비스무역협의를 체결하면서 서비스 분야 개방조치를 크게 확대했다. 중국본토와 홍콩 사이의 자본·인력·서비스 흐름이 더욱 원활하게 되었다.
전리품으로 내어 준, 중국영토
19세기 중반 영국은 중국영토의 식민지를 확장했었다. 1842년 1차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청나라와 난징조약을 맺고 홍콩섬을 할양받았는데, 이후 1860년 2차 아편전쟁 승리의 대가로 구룡반도까지 할양받으면서 홍콩의 영역을 넓혔다. 이어 1898년 신계를 임차하면서 식민지를 확장했다. 이전 글 <천주교가 보내 온 택배, 커피>에서 1847년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가 마카오에서 홍콩으로 이전했다고 언급했었는데, 영국이 홍콩을 할양받은 후 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홍콩 반환문제가 최초로 제기된 시점은 일본이 홍콩을 지배하던 태평양전쟁 시기(1941~1945년)다. 1984년 영국·중국 간의 공동성명에서 홍콩반환협정이 발표되었는데, 1982년부터 시작된 교섭에서 홍콩의 중국반환이 결정된 것이다. 1982년 영국 수상(마거릿 대처)가 중국을 방문하면서 영국·중국의 협상이 시작되었는데, 협상의 계기는 할양이 아닌 임차지역(신계)의 임차기간 만료가 도래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시 중국은 난징조약 등의 무효성을 주장하고 있었기에, 홍콩을 두고 전쟁까지 일으킬 수 없다고 판단한 영국정부는 홍콩의 반환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다시 중국이 되길 거부하는, 홍콩
1997년 7월 1일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155년 간의 영국식민지에서 벗어났다. 협정문의 주요 내용은 1997년 7월 1일을 기점으로 영국이 홍콩 전역을 중국에 반환하고 중국은 홍콩에 특별행정구를 설치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중국은 1997년 이후 50년 간 홍콩의 기존 체제를 기본적으로 유지하고 외교·국방을 제외한 홍콩주민의 자치(독립성)를 인정하면서, 일국양제(一國兩制, 하나의 국가에 2개의 체제)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영국령 홍콩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항구도시로 번성하였으며, 아시아의 금융허브의 역할을 톡톡히 했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155년 간 영국문화에 젖어 있던 홍콩은 사실상 서구였다. 영국이 처음 점령한 센트럴(Central) 지역에는 유럽풍 건물들이 다수 보존되어 있으며, 영미법(Common Law) 체계에서 영어와 홍콩달러가 통용되고 있다. 또한 애프터눈 티와 펍(영국풍)이 보편화되어 있다.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는 오후(3~5시)에 간단한 다과(샌드위치·스콘·케잌 등)와 함께 홍차나 커피를 즐기는 영국문화로, 1840년경 영국 귀족사회에서 시작되었다. 영국귀족은 저녁식사를 늦게 하는 경향이 있어, 저녁식사 전까지의 공복을 달래기 위한 목적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에서도 애프터눈 티 문화가 일찍 자리 잡았는데, 중국의 차 문화로 융합되어 독특한 형태를 띄었다. 대표적인 홍콩 애프터눈 티 명소는 다음과 같다.
페닌슐라 홍콩 : 더 로비(The Lobby)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 : 클리퍼 라운지(Clipper Lounge)
리젠트(구 인터컨티넨탈) 홍콩 : 하버사이드(Harbourside)
인터컨티넨탈 그랜드 스탠포드 홍콩 : 미스트랄 더 벤치(The Mistral)
그랜드 하얏트 홍콩 : 티핀(Tiffin)
리츠칼튼 홍콩 : Cafe 103
포시즌스 호텔 : 더 라운지(The Lounge)
랭함호텔 : 팜코트(Palm Court)
2013년 시진핑 국가주석이 취임한 이후, 홍콩에 대한 중국의 간섭은 심해져갔고, 홍콩인들은 이를 불편하게 여겼다. 2014년 홍콩에서 우산혁명(雨傘革命)이 일어났는데, 이는 중국이 행정장관 직선제 약속을 어긴 것이 발단이 되었다. 대학생들이 동맹휴업을 선언하면서 대규모 민주화 시위를 벌였는데, 시위대가 당국의 최루탄 살포를 우산으로 막아 냈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19년 홍콩 범죄인 인도법(Hong Kong Extradition Law, 도망범 조례)에 대한 개정 반대로 시작된 시위는 최대 규모의 민주화 시위로 확대되었으며, 홍콩의 중국화를 막으려는 103만명 가량의 홍콩시민이 참가했다.
1998년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전용면적 84㎡ 기준)은 0.8~1억원대 수준이었으며, 이는 평단가로 300~400만원이었다. 하지만 2025년 현재 평균 매매가격는 약 12~13억원 수준이나, IMF 시점 대비 12~13배 올랐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지역에 따라 상승률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서울 아파트보다 홍콩 아파트보다 상승률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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