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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법

선동에 취약하게 만드는, 관념성

by Spacewizard 2025.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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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헌법재판소에서는 대통령의 탄핵소추를 판결하게 될 것이다. 한 국가의 고위관료를 파면할 수 있는 절차는 고금을 막론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고, 실제 국가들마다 법적인 요건을 갖추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도 도편추방(陶片追放)법이 있었는데, 정치적으로 추방해야 할 사람이름을 조개껍데기· 파편에 기재하여 제출하는 것이다. 도(陶, 질그릇)은 진흙을 빚어 구운 질그릇을 의미한다.

 

탄핵(彈劾, 튕겨서 캐물음)관리의 죄를 조사하여 임금에게 보고하는 것을 의미로, 대론(臺論)·대탄(臺彈)과 같은 의미이다. 근현대에 와서는 대통령·국무위원·법관 등을 국회에서 소추한 후, 해임·처벌하는 것을 말한다.

 

헌법재판소의 몫, 탄핵심판

 

이전 글 <여러모로 권력을 노렸던 공간, 헌법재판소 터>에서 헌법재판소 터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면서,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 법령의 위헌여부 및 분쟁심판 등을 관장하는 특별재판기관이라고 언급했었다. 헌법재판소가 관료의 탄핵을 심판하기도 한다. 한국 사법부는 다음과 같이 3심제를 택하고 있다.

 

1심·2심(항소심) : 사실심

3심(상고심) : 법률심

 

사실심(事實審)은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재판으로, 사실·법률문제를 모두 판단한다. 반면 법률심(法律審)은 법리를 심리하는 재판으로, 법률문제만을 판단한다. 헌법재판소는 법률심이지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은 사실상 여론재판·정치재판일 수 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 이전에 다음 2명의 대통령이 탄핵 소추·심판을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 : 기각

박근혜 대통령 : 인용

 

두 탄핵사건 모두 사실상 진보정당의 승리로 볼 수 있는데, 헌법재판소 평의가 진행되는 동안 여론조성이 탁월했었다. 평의(評議)헌법재판관 전원이 참석하여 사건을 논의·표결하는 회의로, 절차를 주도하고 결정문 초안을 작성하는 역할을 한다. 탄핵제도에 대해 낯설었던 순진한 국민들은 지난 20여년 동안 2번의 탄핵에서 느낀 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바로 여론형성 과정에서 동원되는 수단·방법의 진위·적법성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고, 윤석열에 대한 탄핵국면에서는 보수진영에서도 뛰어난 동원력과 여론조성을 보여줬다.

 

당연하게 받아 들여지는, 선동

 

200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사실상 풍문(風聞, 바람처럼 떠도는 소문)에 의한 탄핵에 가까웠는데, 언론·야당은 법적으로 유죄확정되지도 않거나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대중에게 필터링 없이 흘렸다. 보수진영에서는 뒤늦게 여론형성의 필요를 깨닫았지만, 이미 헌법재판소 평의가 끝난 상태였다. 한국인들은 유독 선동에 취약한 기질을 가지고 있는데, 언론·정치인은 이러한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전략적으로 흘린 자극적인 소재들이 들불처럼 일어나면, 균형감각을 잃은 대중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쏠릴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듯하다.

 

선동(煽動, 부추겨 움직임)개인·집단을 부추겨서 특정단체가 원하는 움직임(일·행동)을 하게끔 하는 행위로, 주로 대중의 감정을 부추길 만한 문서·언동이 동원된다. 박근혜 탄핵사태 당시 선동을 위해 동원된 가짜언동으로는 세월호 7시간, 굿판, 밀회설, 섹스비디오, 은닉재산(조 단위) 등이 있으며, 그 전에도 광우병, 사드전자파, 후쿠시마 오염수 등이 선동에 매우 잘 활용되었다. 결국 기획집단의 정치적 이익 외에는, 큰 사회혼란과 국가손실이 남겨졌을 뿐이다.

 

어릴 때 말재간이 좋은 친구들이 웃자고 하는 말 중에는 "조선놈은 매가 약이다"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물론 어른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을 익혔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조선인의 열등함과 스스로의 폭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식민사관과 선동적인 표현을 만들어 냈다. 30년 이상의 강점기 동안 선동적 표현에 스며든 조선인들은 어느 순간 거짓을 당연히 받아들였고, 해방된 지 수 십 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살아 남아 있다. 웃긴 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반일감정으로 또 선동을 하는 것이다. 선동을 이용하려는 세력은 어디서나 있기 마련이지만,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관념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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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에 약한 배경, 관념성

 

전체주의 국가의 국민들이 선동에 약한 편이지만, 선동에 대한 취약성을 주자학적 관념성으로 설명하려는 견해가 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안봐도 뻔하다"

 

12세기 주희의 학문은 심신을 수양하는 개인적 차원에서의 학문으로, 성인·군자가 되기 위한 목적으로 했다. 국가적 이익을 위해 실리(경제성장, 군사력 증강 등)을 추구하는 학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주희는 역사적 탐구를 경시했는데, 이는 미성숙한 존재(개인)가 섣불리 역사책에 몰입하게 되면 도덕·수양을 게을리 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주희 입장에서 역사책은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소인들의 악한 기질들이 총정리된 기록이었을 것이다.

 

주자학(朱子學)적 관념성은 중대문제(우주섭리·자연질서·인간도리)를 논하면서 자연계에 관한 과학적 탐구나 인간계에 관한 경험적 조사도 없이, 오로지 머리로 하는 거대관념에 의지하여 과도한 일반론을 펼치는 사유습관을 말한다. 이는 구체적 사물에 대해 스스로 하나하나 따지며 탐구해 보지 않아도, 내면적 관조만으로도 진리를 얻을 수 있다는 망상에 이르게 된다. 관조(觀照, 비추어 바라보다)는 어떤 사건·현상·물건 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만 한다는 의미로, 자기사고가 결여된 상태를 말한다.

 

조선으로 들어온 주자학은 그 관념성을 한층 강화시켰고,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주희보다 더 극단적으로 경험적 탐구를 멀리했다. 주희를 흠모한 조선선비들은 유가경전에만 매몰된 채로, 중국(역사·문화·지리·언어 등)에 대한 체계적 탐구는 거의 없었다. 조선이라는 갇힌 관념적 공간에서 연구·탐구를 통해 실용적인 가치를 창출했던 과학자(장영실·이순지·이천·최천약 등)와 실학자들은 가히 천재라고 평가할 만하다. 관념성은 전형적인 동양철학사상이고, 조선 전체를 구석구석 휩쓸었던 사상이었다. 과거는 과거일 뿐, 유교사상에 세뇌되었던 조선에 대한 가치판단은 논외로 한다. 문제는 구시대의 정신이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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