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성남시가 위례지구 도시지원시설 용지(지원용지2)에 포스코(POSCO)홀딩스 계열사(연구·지원)의 입주를 승인했다. 이전 글 <육속화를 앞둔 섬도시, 위례>에서는 포스코홀딩스가 지원용지2 내 건물준공 후 10년 간 수도권연구개발센터(미래기술연구원 수도권 분원)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언급했었다. 하지만 최근 포스코홀딩스의 경영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계열사를 입주시키는 방향으로 사업계획 변경한 것이다.
미래기술연구원 용도와 관련해서는 포스코홀딩스가 애초에 변경계획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고, 본원이 위치한 포항지역 주민의 강한 반발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한들 대기업 유치라는 큰 틀에서는 변함이 없고, 첨단기술·고급인력의 유입이라는 측면에서는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전 글 <잠실과 함께 쓸모 있어진, 탄천>에서는 탄천이 앞으로 발전할 예정이며, 서울 동남권역의 젖줄이라 할 만하다고 언급했었다. 포스코홀딩스 계열사들의 다양한 연구·업무 공간으로 활용됨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생산·부가가치 창출, 고용 유발, 지방세 수입 등)가 16조원(10년) 가량이라는 예상이 있는데, 이 수치의 절반이라도 파급을 가져온다면, 탄천을 따라 이어지는 서울 동남권 산업벨트를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흔히 철강산업은 장치산업으로만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기술연구를 게을리 할 수 없다.
국가핵심기술 신소재, 고망간강
2025년 3월 트럼프 대통령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파이프라인 프로젝트 추진계획을 밝혔는데, LNG 수출제한이 풀리면서 시장확대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현재 포스코는 LNG 관련 철강(건설·생산·저장·판매)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LNG터미널 LNG운반선 LNG 연료탱트를 포함한 글로벌 LNG 밸류체인을 강화하고 있다. 2013년 포스코는 세계 최초로 고망간강을 개발했는데, 고망간강(High-manganese steel, High-Mn steel)은 탄소강의 강도·인성을 높이기 위해 망간(Mn, 약 24%)·크롬(3% 이상)을 함유한 철강이다.
기존의 니켈·알루미늄 합금(니켈 9%)과 동일한 성능이면서도, 가격은 30%나 저렴한 수준이다. 잘 닳지 않으며 자석에 붙지 않는데다 극저온(영하 196도)에서도 깨지지 않는다. 국제해사기구(IMO, 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는 해상 안전·보안, 해양환경 보호를 위한 국제기구로, 2022년 해사안전위원회(MSC, Maritime Safety Committee)는 포스코의 고망간강을 국제기술표준으로 승인했다. 1962년 한국정부가 IMO에 가입한 이후 소재를 제안하여 안건을 통과시킨 최초 사례이며, 2024년에는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었다.
거대하지만 날렵한, 포스코홀딩스
2025년 들어 포스코홀딩스는 사업재조정에 나선 것으로 보이는데, 그 배경에는 철강산업의 침체, 전기차 시장 부진에 따른 이차전지 수요 둔화와 함께 트럼프의 대중국 압박이 자리하고 있다. 2024년 4분기 선제적 구조개편(저수익 자산), 사업효율성 제고를 위한 일회성 손상차손과 시황악화로 인한 평가손실 등을 재무제표에 반영했다. 철강부문에서는 저효율공장의 가동을 중단하면서 손상차손이 발생했고, 이차전지소재부문에서도 저수익자산(양·음극재 노후설비 등)의 손상차손을 인식했다. 자산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비핵심자산 매각을 진행해왔고, 2024년 6,600억원을 마련한데 이어 2025년 1.5조원 가량의 현금을 추가적으로 확보할 계획이다.
2024년 포스코홀딩스는 CNGR(중국, 지분율 40%)과 합작하여 포스코씨앤지알니켈솔루션(포스코홀딩스 자회사)을 설립했는데, 2025년 2월 해산결의와 청산인 선임을 통한 청산절차에 들어갔다고 한다. 2024년 5월 영일만4산업단지(포항)에 니켈생산공장을 착공하여, 연 5만t의 고순도 니켈을 생산해 포스코퓨처엠 등에 공급할 계획이었다. 다만 착공 후 건설 공사는 시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합작법인의 설립목적은 이차전지 소재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함이었으나, 2024년 11월 트럼프의 당선으로 중국과의 합작이 정치적 리스크로 급부상한 것이다. 니켈을 삼원계 배터리의 핵심원료 중 하나지만, 포스코홀딩스는 니켈의 직접 생산 보다는 고부가 소재사업(전구체·양극체 등)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퓨처엠은 전구체 양극제를 담당하는 포스코홀딩스의 핵심 계열사로, 2024년 CNGR(지분율 80%)과 합작하여 씨앤피신소재테크놀로지(전구체 생산)를 설립했다.
포스코퓨처엠 발목 잡은, 캐즘
주변 지인들을 보면 포스코퓨추엠 주식에 투자했다가 60% 이상 평가손실을 보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전기차 캐즘에 따른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캐즘(Chasm, 협곡)은 지각변동으로 인해 골이 깊고 넓어지면서 지각이 단절된 것을 의미하는 지질학 용어로, 경제학에서는 신기술·혁신제품이 초기시장에서 주류시장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겪는 일시적인 수요정체 현상을 의미한다. 1991년 제프리 무어(Moore)의 저서 Crossing the Chasm에서 처음 제시되었다.
캐즘의 주된 원인은 초기시장과 주류시장의 괴리이다. 초기시장은 제품의 혁신성을 중시하는 반면, 주류시장은 실용성을 중시한다. 이에 따라 얼리어답터(선각수용자)와 다수수용자 간의 수용성에 대한 심리적 차이가 시차(time lag)로 나타나며, 기업이 접근해야 할 마케팅 전략도 달라진다.
캐즘은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분명히 인지·극복해야 대상으로,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주류시장 진입에 실패하게 된다. 캐즘을 성공적으로 극복하여 대중화를 이루면, 뒤따라오는 것은 폭발적인 성장일 수 있다. 대표적인 극복사례로 스마트폰·소셜미디어가 있으며, 전기차는 현재 극복 중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캐즘을 극복하기 위해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생태계를 구축하면서, 소비자에게 제품의 실용성·가치를 명확하게 전달하면서 구매·사용의 편의성을 인식시키기 위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개척정신의 상징, 포항제철
1956년 이승만 정부는 장기경제개발계획안을 미국에 제출하고 개발의지를 표명했다. 4.19 혁명 이후 장면 정부는 선민중화 후산업화를 주장했으나, 결국 박정희 정부가 다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국가 주도 산업화정책을 추진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년) : 경공업 육성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1971년) : 새마을운동 시행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2~1976년) : 중화학공업 육성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7~1981년) : 자력성장
제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1982~1986년) : 물가안정, 무역수지 흑자
제6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1987~1991년) : 1988년 하계올림픽 개최
제7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1992~1996년) :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
박정희은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준비하면서, 산업화를 위해 철강의 자체생산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당시 제철소 건설을 위한 주식공모를 통해 조달한 금액은 1,300만원(목표액 33억원의 0.4%)에 불과했는데, 이는 종합제철소을 건설하기 위해 해외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1965년 5월 박정희는 미국 피츠버그 철강단지를 방문한 후, 국제제철차관단(KISA)을 통한 자금조달에 대한 조언을 얻었다.
박태준(대한중석 사장)이 종합제철추진단장으로 임명되었고, 다음 3개소를 제철소 후보지로 정했다. 국가적 운명이 걸린 대규모 사업이었지만, 사업성 보다는 정치인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던 시절이었다.
충남 서천(비인) : 김종필(공화당 의장), 김용태(원내총무)
경남 울산 : 이후락(대통령 비서실장)
경남 삼천포 : 서정귀(박정희 친구)
결국 박정희는 제철소의 최종입지를 포항으로 정했는데, 이러한 결정은 미국 방한투자단의 예비조사 결과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포항은 앞바다가 깊어 추가적인 준설이 요구되지 않았으며, 대형 화물선의 용이한 진입과 넓은 배후지가 장점으로 평가받았다. 문제는 사업성이었는데, 실제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내외 기관·기업들은 포항제철소 건설에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1969년 1월 박태준은 KISA과의 협상에서 실패했는데, 이는 사실상 세계 철강·금융업계의 한국을 신뢰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에 박정희·박태준은 정치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일청구권자금 잔액 1억달러(농수산업 지원 용도)를 전용하는 결단을 내린다. 대일청구권자금은 현금지급이 아니라, 동등한 가치를 가지는 일본국의 생산물 및 일본인의 용역을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이렇게 일본기업의 기술과 일본의 자본(별도의 차관)을 이용하여, 1970년 착공하여 1973년 준공·조업했다. 종합제철소 건설비는 1,205억원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의 3배 가량이었다고 한다.
태생적 한계, 정부 품
포항제철은 제2제철소 사업권을 획득하게 되었는데, 금호도(광양만)가 제2제철소 부지로 결정되었다. 깊은 수심과 적은 조수간만차를 가지고 있어 제철소 입지로는 최적이었지만, 전라도에 위치했다는 점에서 내부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결국 박태준이 광양을 직권으로 결정하면서, 부지조성작업을 거쳐 1985년 착공하여 1992년 4기가 준공되었다. 광양제철소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제철소이다.
1993년 박태준은 세무조사로 물러났으나, 뉴욕증권거래소(1994년)와 런던증권거래소(1995년)에 상장되었다. 금세기빌딩(을지로)를 사무실로 사용해왔으나, 1995년 포스코센터(대치동)이 완공되면서 이전하게 된다. 2000년 정부지분이 완전 매각되었고, 2002년 회사명을 포스코(기존 포항종합제철)로 변경했다. 포스코 회장 직위는 옥상옥(屋上屋, 지붕 위의 지붕)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수 많은 계열사를 총지휘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자리임에 분명하다. 역대 회장은 다음과 같은데, 정부의 입김으로 인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중도사퇴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유상부 이후로는 민영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권교체시마다 회장이 교체되었다.
박태준(1968~1992년) : 창립자, 초대회장
황경로(1992~1993년) : 관리부장 역임
정명식(1993~1994년) : 토건부장 역임
김만제(1994~1998년) : 외부인사(경제관료)
유상부(1998~2003년) : 부사장 역임, 민영화
이구택(2003~2009년) : 공채 1기, 포항제철소장 역임
정준양(2009~2014년) : 광양제철소장 역임
권오준(2014~2018년) : 기술부문장 역임
최정우(2018~2024년) : 지주체제 전환
장인화(2024년 3월 이후) : 포스코 사장 역임
2022년 3월 포스크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위해 기존 포스코를 다음 2개의 회사로 물적분할했는데, 지주사(포스크홀딩스)는 기존 자회사·계열사를 지배·관리하며 신사업 투자·발굴을 하고 있다.
지주회사(존속법인) : 포스코홀딩스
사업회사(신설법인) : 포스코
공학도 출신 군인, 박태준
1927년 경남 동래군(현 부산 기장군)에서 태어난 박태준은 6살에 떠났던 일본땅에서 해방을 맞이한 후, 1947년 육군사관학교(6기)로 입교했다. 당시 박정희(포병 대위)로 사관학교에서 탄도학 교관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탄도학에 탁월했던 박태준이 인상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와세다대학 기계공학과를 중퇴한 박태준에게 탄도학 이론은 수월했을 것이다.
5.16 군사정변 당시, 박정희는 자신의 가족을 부탁할 정도로 박태준을 신임했었다. 쿠데타 이후 박태준은 박정희(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고, 박정희 정부에서는 정치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은 채 경제인으로 활약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정치인·관료로서도 활약했는데, 자녀의 혼맥이 화려한 것으로 유명하다.
박성빈(장남) : 정도원(삼표그룹 회장) 사위
윤영각(첫째 사위) : 삼정KPMG 회장
고성덕(둘째 사위, 이혼)
김형수(셋째 사위) : 김도근(동일고무벨트) 차남
김병주(넷째 사위, 재혼) : MBK파트너스, 전재용(전두환 차남)과 이혼
가난한 나라에서 쿠데타를 성공한 박정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경제발전이었다. 보릿고개라 맹위를 떨치던 시절이었기에, 잘 살 수만 있다면 국민들로부터 정당성을 얻기에 충분했다. 쿠데타에서 한번 목숨을 걸었던 만큼, 경제정책 추진 과정에서도 과감성 넘치는 결단이 많았다. 물론 이러한 모습이 독재자의 이미지로 비춰지기도 하고, 정치자금 마련용이었을 수도 있다.
박정희·박태준이 국가를 위해 실행한 최고의 결단 중 하나는 포철(포항종합제철)을 설립한 것이다. 오늘날 산업의 씨앗이 반도체라면, 1960년대 산업의 씨앗은 철강이었다. 그 시절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유약한 리더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몽상 같은 종합제철소 건립은 시도 조차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는데, 이는 당시 글로벌 기업·금융기관들의 의견도 대동소이했던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기에는 유독 기적과 같은 스토리가 많은데, 너무 익숙한 나머지 이를 과소평가하는 경향도 있다. 이제는 공룡기업이 된 포스코홀딩스도 창립자들의 도전정신을 잊지 말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선도하는 기업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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