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로버트 기요사키가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위기에 놓인 미국경제를 경고하면서, 양극화를 가속화하는 금리인하 정책을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실물자산 확보를 권했는데, 현금가치 하락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기요사키의 저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두 아빠를 통해 돈을 대하는 태도가 인생을 바꾼다고 말하고 있는데, 외환위기 직후 출간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재테크에 대한 관념이 체계화되지 않았던 시기, 기요사키는 한국인에게 재테크의 기본개념을 심어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기작가가 판단하기에는 현재의 거시경제 상황은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1980년대 이후 40년간 세계화와 기술발전은 글로벌 3저(저물가·저금리·저성장) 시대를 열었고, COVID-19 팬데믹 이후에야 잠자고 있던 인플레이션이 깨어났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이 더 이상 통화현상이 아닌, 경제구조적 전환에 따라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복합요인(공급망 재편, 노동시장 변화, 지정학적 갈등 등)이 작용하는 것이다.
기준금리 인상은 물가를 낮추는 대표적인 방법이지만, 그에 따른 경기침체는 경제적 약자에게 더 큰 고통을 요구하게 된다. 가격통제는 해당 국가의 여러 거시적 요인들을 정확히 파악한 후, 그에 맞는 처방을 써야지만 효과를 볼 수 있다. 부작용 없는 전략적 가격통제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정부가 몇이나 될까.
중세 영주의 권한, 시뇨리지
시뇨리지(seigniorage, 화폐주조차익)는 법정 액면가치에서 제조비용을 뺀 값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시뇨르(seigneur, 영주·군주)에서 파생되어 군주의 권한(화폐주조권)이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시뇨리지를 민간에 허락했다가는 경제보다는 주조에만 집중할 가능성이 높기에, 주조권은 일반적으로 중앙이 갖는다. 종이화폐경제 이전 시기에는 액면가보다 낮은 가치를 가진 금속으로 주조했으며, 금속화폐를 독점적으로 발행하던 절대군주(내지 봉건영주)가 시뇨리지를 누렸다. 이전 글 <아직까지는 안정적이지 않다는, 스테이블 코인>에서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의 수급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알고리즘) 중에 시뇨리지 쉐어를 언급한 바 있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
주조에 들어가는 금속재료(금·은)의 양도 일정해야 했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금이 10% 함유된 금화와 5% 함유된 금화가 동시에 유통되다고 가정해보자. 눈치빠른 이들은 10% 금화를 녹인 후, 5% 금화 2개를 만들어서 유통시킬 것이다. 결국 함유량이 낮은 악화만 시장에 남게 된다. 물론 악화화 현상은 종이화폐가 정착되면서 사라졌다.
하지만 종이화폐라도 시뇨리지는 계속 생기는데,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중앙은행이 신규발행 국채를 매입하거나 정부에 직접대출하는 경우이다. 중앙은행이 발행한 신권은 민간경제로 바로 흘려가면서 시중의 통화량을 증가시키는데, 밀턴 프리드먼은 이를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는 상황이라 비유했다. 헬리콥터 드랍 방식의 시중통화량 증가는 전반적인 물가를 올리면서, 심하면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진입할 수도 있다. 2008년 짐바브웨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이에 해당한다.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민간의 부가 정부로 이전되는 경향이 있는데, 정부가 누린 세뇨리지를 인플레이션세라고도 한다. 인플레이션은 명목금액으로 표시된 정부부채의 실질가치도 낮추는데, 이는 기업·개인의 부채 실질가치도 마찬가지로 낮아진다. 인플레이션 시대에는 대체적으로 빚이 많은 경우가 유리하며, 한 국가에서 부채를 가장 많이 진 주체는 정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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