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마스터즈 토너먼트를 파이널 라운드를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제아무리 철인도 하나의 나약한 인간이며, 나약한 인간이라도 각성에 따라 결과는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전 글 <노자가 알려주는 인생에서 필요한, 각성>에서 강요·죄책감 없이 그저 자신을 잘 대해주고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궁극적인 각성이라고 언급했었다.
맥길로이는 2014년 디오픈 우승 이후, 10년 동안 메이저 우승이 없었다. 2024년 US오픈에서도 디셈보에게 아쉽게 패배했지만, 맥길로이의 인생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은 그린자켓이었다. 그린자켓은 코 앞에 두고 흔들렸던 맥길로이와 이를 극복해내는 맥길로이를 보면서 포기하기 않는 마음과 집중력의 중요함을 느꼈다. 세계 정상급에게는 쓰라린 기억도 정상급으로 남게 된다. 무거운 왕관의 무게랄까. 이전 글 <가끔 보고 있기 힘들 정도로 무자비한, 골프>에서 김인경이 보낸 연장패배의 절망을 언급하면서, 왠만한 투어프로였으면 그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언급했었다.
딸의 조마조마한 퍼팅, 복선
로리 맥길로이(Rory Mcllroy)는 대회 전에 열린 파3콘테스트에서 좋은 예감을 느꼈을텐데, 딸의 앙증맞은 롱퍼트(14m 가량)가 성공했던 것이다. 정말 기적과도 같은 복선이었다. 하지만 맥길로이는 1라운드에서만 2개의 더블보기를 기록하면서 안색이 좋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은 1위(저스틴 로즈)와 7타 차이로 벌어진 맥길로이에 대한 우승기대를 접었었다. 골프가 심리·분위기를 타는 스포츠이다보니, 왠만한 각성으로는 7타 차이를 리커버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길로이는 2·3라운드 선두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인간계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는데, 특히 3라운드에서 2개의 이글은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하지만 4라운드에서 로즈(66타)보다 7타를 더 치면서, 공동 1위로 마무리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18번홀 부정확한 웨지, 완전하지 못했던 벙커샷, 근거리 퍼트 실수는 맥길로이에게는 또 한번의 악몽으로 남을 뻔했다.
절대재능의 발현, 커리어 그랜드슬램
그랜드 슬램(Grand Slam)은 한 해에 열리는 4대 메이저를 전부 우승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 달성한 사람은 바비 존스(Robert Tyre Jones)가 유일하다. 변호사 바비 존스는 평생 프로선수로 전향하지 않은 채, 아마추어 경력을 가져갔다. 1930년 바비 존스는 한 해 동안 다음 4개의 메이저를 전부 석권하면서,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브리티시 아마추어 챔피언십
디 오픈
US오픈
US 아마추어 챔피언십
특히 디 오픈(영국 로열리버풀GC)에서는 3번째 클라레 저그를 들어 올렸다. 1934년 클리포드 로버츠와 함께 오거스타 내셔널GC(미국 조지아주)를 설립하고,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창설했다. 클라레 저그(Claret Jug)는 디 오픈 챔피언십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주전자 모양의 은제 트로피로, 마스터스 토너먼트의 그린자켓과 비슷한 위상을 가진다. 1873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클라레 저그는 클라레(Clalet, 프랑스 보르도산 적포도주)와 저그(술주전자)를 합친 말이다. 1927년부터는 원본 트로피는 영구보관되었으며, 우승자에게는 복제본이 수여되었다. 우승자는 1년 동안 트로피를 보관할 수 있으며, 다음 해 대회 시작 전에 반환해야 한다.
프랑스어 클레레(Clairet, 맑다)에서 유래한 클라레는 보르도 레드와인을 통칭하는데, 과거에는 보르도에서 생산되는 연한 색의 레드와인이나 진한 로제와인을 지칭했었다. 보르도 레드와인은 여러 품종의 블렌딩으로 제작되는데, 주로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메를로(Merlot), 말벡(Malbec), 쁘띠 베르도(Petit Verdot) 등이 사용된다.
이전 글 <야외에서 즐겨야 제대로, 골프>에서 남자골프 4대 메이저 대회가 마스터스 토너먼트(4월), PGA 챔피언십(5월), US Open(6월), The Open 챔피언십(7월)이라고 언급했었다. 커리어 그랜드 슬램(Career Grand Slam)은 경력 전반에 걸쳐서 4대 메이저 각 대회에서 최소 한번 이상 우승하는 것으로, 맥길로이 이전에는 단 5명의 남자선수가 달성했었다. 단순히 운이 좋아서는 이루기 어려운 업적으로, 동시대 선수들과 대비하여 절대적인 재능을 갖춰야 한다.
진 사라센(Gene Sarazen) : 1935년 마스터스
벤 호건(Ben Hogan) : 1953년 디오픈
게리 플레이어(Gary Player) : 1965년 US오픈
잭 니클라우스(Jack Nicklaus) : 1966년 디오픈
타이거 우즈(Tiger Woods) : 2000년 디오픈
2025년 현재 최고의 기량을 뽐내고 있는 스코티 셰플러는 PGA투어 통산 13승을 기록했지만, 메이저대회 우승은 2회에 불과하다. 2회의 우승도 마스터스(2022년·2024년)에서만 이뤄졌기에, 그랜드슬램으로 가기 위해서는 3개의 메이저대회 우승이 필요하다.
생각할수록 대단한, 박인비
현재 여자골프는 다음 5개의 메이저 대회를 개최하고 있지만, 에비앙을 제외한 4개의 전통대회를 석권하는 것만으로도 커리어 그랜드슬램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셰브론 챔피언십(4월)
US 여자오픈(5월)
KPMG LPGA 선수권(6월)
에비앙 챔피언십(7월) : 2013년 추가
AIG 위민스 브리티스 오픈(8월)
여자골프에서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선수가 없지만,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여자선수는 다음 7명이 있다.
루이스 석스(Louise Suggs, 1957년)
미키 라이트(Mickey Wright, 1962년)
팻 브래들리(Pat Bradley, 1986년)
줄리 잉스터(Juli Inkster, 1999년)
캐리 웹(Karrie Webb, 2001년)
아니카 소렌스탐(Annika Sorenstam, 2003년)
박인비(2015년) : 아시아인 최초
박인비는 LPGA 투어에서 통산 21승을 기록하였고, 그 중에는 7번의 메이저 우승이 있다. 박인비는 커리어 골든 슬램도 달성했는데, 이는 4대 메이저 대회와 올림픽 금메달(2016년 리우올림픽)을 획득하는 것이다.
박세리는 LPGA 투어에서 통산 25승을 기록하였고, 그 중에는 5번의 메이저 우승이 있다. LPGA 투어에 진출한 1998년 맥도날드 LPGA 챔피언십과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면서 메이저 2연승을 기록한 이후, 2001년 위타빅스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우승했다. 2002년·2006년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같은 대회에서만 3승을 했다. 아쉽게도 나비스코 챔피언십(현 셰브론 챔피언쉽)에서 우승하지 못하면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 만큼 골프선수에게 커리어 그랜드 슬램은 꿈만 같은 성과이다.
'골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운동/골프] 지면을 치는, 바운스 (0) | 2025.05.12 |
---|---|
[골프] 궤도 안착을 위한, 스트레칭 (1) | 2025.05.02 |
[골프/스윙] 올리지 말고 올려야 하는, 골프 (0) | 2025.03.24 |
[골프/스윙] 채찍처럼 다뤄야 하는, 샤프트 (3) | 2024.12.31 |
[골프/마인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 내려놓기 (0) | 2024.07.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