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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법

인간이 인간을 구원한, 카톨릭

by Spacewizard 2025.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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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성당이라는 공간을 가장 방문했던 시기가 30대 전후였는데, 신앙생활이 아닌 친구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평소에는 몰랐지만, 주변에 생각보다 천주교 신자가 많았다는 점에서 크게 놀랬다. 자신의 종교를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았지만, 다들 어릴 적에 받은 세례명을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이 생소했다. 또한 성당에서의 결혼을 선호했으며, 도시 내에 동네마다 성당이 있다는 점도 처음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카톨릭(천주교)는 성모 마리아를 믿는 종교라고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공경하는 것이었다.;

 

최근까지도 천주교·개신교의 차이를 구분하지 몰랐는데, 지난 2천여년 동안 서양에서의 기독교 역사가 사실상 세계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반성했다. 고교시절에 나름 세계사를 잘 안다고 자부했었는데, 복합적인 배경·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그저 증발성 있는 암기였을 뿐이었다. 오늘은 인간(교황)에게 구원을 기댄 기독교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자.

 

개신교가 생겨나기 이전, 카톨릭

 

하나님(야훼)이 천지·인간를 창조하고, 완벽한 피조물로 아담·하와를 만들어 에덴동산에 살게 했다. 참고로 에덴동산은 하나의 낙원이지, 낙원 그 자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화해)를 누리며 평화로운 삶은 살던 아담·하와는 하나님의 금기를 어긴 후, 에덴동산에서 추방된다. 금지된 과일(선악과)을 먹었다는 행위에는 생각보다 큰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순종을 저버리는 대신, 인간 스스로의 판단을 우선시하는 교만·불순종을 상징한다. 이 일로 아담·하와는 영생의 거주지를 잃었고, 화려했던 뱀은 가장 징그러운 몸을 갖게 된다.

낙원에서 추방당하는 아담과 하와, 1695년작 [출처:위키피디아]

실낙원(失樂園, Paradise Lost)은 17세기 존 밀턴(영국 시인)이 지은 서사시로, 뱀으로 변신한 사탄의 유혹에 의해 타락한 아담·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쫒겨나는 내용을 주제로 한다. 하와(חַוָּה)는 모든 인류의 어머니로, 「생명」을 의미하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했다. 훗날 하와는 헬라어 에바(Εύα)로 번역된 후, 라틴어를 거쳐 영어 이브(Eve)가 되었다. 이후 인간은 낙원으로 돌아가려는 구원의 역사를 시작했고, 이 와중에 신·인간 간의 화해를 돕는 매개역할로 등장한 것이 교회이다. 예수는 베드로를 제자단의 으뜸으로 지명했는데, 성경(마태 16:18-19)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양들을 돌보아라. 내가 네게 열쇠를 주고 모든 권한을 주리니, 무엇이든지 네가 열쇠를 잠그거나 열 수 있느니라.

 

기독교를 조직적으로 박해한, 네로

 

로마에 교회를 세운 베드로는 네로의 박해로 순교했다. 개인적으로 네로는 친숙한 인물로 여겨지는데, 1980년대 KBS 「쇼비디오자키 : 네로 25」에서 최양락이 연기한 네로황제 때문이다. 네로는 가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와 아그리피나(아우구스투스 증손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죽은 후에 어머니는 클라우디우스(네로 숙부)의 2번째 아내가 되었고, 네로는 클라우디우스의 양아들로 입적되었다. AD 54년 클라우디우스가 사망하면서, 네로는 어린 의붓동생(브리타니쿠스)를 제치고 제5대 황제로 취임했다. 이듬해 55년 브리타니쿠스는 독살된다.

 

치세 초기에는 세네카·부루스의 보좌를 받으며, 로마의 문화·건축·예술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네로는 점점 난폭해졌다. 59년·62년 차례로 어머니·아내(옥타비아)를 살해했는데, 어머니의 정치적 간섭이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미쳐가던 와중에, 64년 로마 대화재가 발생한다. 네로황제는 화재에 대한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전가하면서 박해를 시작했는데, 이는 로마제국 최초의 조직적인 기독교 박해였다. 당시 로마사회에서 기독교인은 이방인으로 여겨졌기에 손쉬운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네로의 박해는 광범위하면서도 잔인한 것으로 유명한데, 기독교인들은 십자가형에 처해졌고, 원형극장에서 야수에게 던지거나 나무에 묶인 채로 태워지기도 했다고 한다.

 

네로의 박해 이후, 기독교인은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순교문화를 형성하면서 더 굳건해졌고, 로마제국과 기독교 간의 관계를 크게 악화되었다. 68년 갈바(타라콘네시스 속주 총독)가 반란을 일으켰고, 이에 각지의 총독들이 연합했다. 마침내 네로는 원로원으로부터 「국가의 적」으로 선고받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2025년 한국의 국회가 대통령을 내란의 수괴로 지목한 상황과 유사해보이지만, 현대에서는 치열한 법정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네로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다.


베드로를 계승한, 교황

 

이후 베드로의 역할을 계승한 교황은 성좌(holy see)에 앉은 무오성(papal infallibility)으로 인식되면서, 하나님의 뜻을 집행하고 하나님과의 화해를 돕게 된다. 교황의 문장을 보면 2개의 열쇠모양가 크로스로 그려져 있는데, 이는 교황이 가진 천국의 열쇠를 의미한다. 바티칸 교황청의 건물도 위에서 내려다 보면, 열쇠모양으로 설계되었다.

 

교황에게 사도전승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이는 교황이 사도들로부터 계승된 전통·교리들을 전달·보존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도전승(apostolic succession)은 3년 동안 예수와 함께한 사도들이 구원의 도리와 인물·사건에 대한 구세사적 의미 등을 담은 전승으로, 초대교회 시기(3세기 초반)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도전승은 크게 다음 2가지로 구성된다.

 

성경 : 기록된 성서

성전 : 구두로 전해지는 사도들의 설교·모범·제도

 

이미 타락한 인간에게 구원이 가능한 것인지, 더 나아가 비현실적인 존재가 아닌, 한 인간(교황)에게 구원에 관한 사항을 전적으로 맡길 수 있는 것인가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사상적 바탕이 필요했을 것이다. 인간이 비록 낙원에서 쫒겨났지만, 아담의 완벽한 면모 중의 일부라도 인간에게 남아 있기에 하나님의 뜻을 어느 정도는 헤아릴 수 있다는 사상이 깔린 것이다.

 

중세카톨릭의 이론적 토대, 토미즘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형이상학적 개념)을 기독교 신학에 통합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법」을 차용하여 토미즘(Thomism, 스톨라 철학)을 만든 것이다. 자연법이 하나님의 법을 반영하고 있기에 인간도 어렴풋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것이 골자이다. 중세카톨릭은 난해한 토미즘을 바탕으로 자리를 잡게 되는데, 컨텐츠로는 7성사(세례·성체·견진·고해·병자·성품·혼인)와 면죄부(indulgence)를 갖추게 된다. 면죄부는 어찌보면 죄를 사해주는 교회가 가진 핵심역할이었는데, 다만 노력 없이 돈으로 면죄부를 살 수 있는 타락이 문제였다.

 

1224년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퀴노(이탈리아)의 백작 아들로 태어났는데, 이름은 「아퀴노의 토마스」를 의미한다. 5살에 수도원학교에 입학하였고, 나폴리대학에서 수학했다. 1245년 파리대학 입학하여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를 만나게 되는데, 알베르투스는 토마스에게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중요성을 알게 해줬다. 이후 이탈리아에서 나서 자란 토마스는 파리에서 큰 업적을 일구게 된다.

 

개신교는 카톨릭모델과는 반대되는 인간관에서 시작하는데, 실낙원한 인간의 모습을 타락(불완전·죄) 그 자체로 바라봤다. 이는 인간에게 아담의 완벽한 면모 중 일부라도 남아 있다는 시각에서 출발하는 카톨릭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게 되는데, 구원에 대한 확신을 버린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과 완전히 유리된 존재로, 인간은 자신의 힘·의지·노력으로는 자신의 구원을 도모할 수 없다고 믿었다. 인간은 구원받을 자격조차 없는 존재이지만, 일방적·무조건적·무대가의 은총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절제·기강·규율·규칙을 갖춘 생활을 할수록, 인간은 성숙해지기 마련이다. 과거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실제 군필자들은 이해할 것이다. 생전 처음 겪는 절제·기강·규율·규칙을 갖춘 일상에서, 잠재력(자기수양)과 소중함(자유)을 느끼게 된다. 500여년 전 교육·절제·기강·규율·규칙이 본격적으로 인류의 삶에 녹아 들기 시작했는데, 그 계기는 칼뱅주의이다.

 

세속을 원초적인 소비욕구가 팽배한 사회로 본다면, 세속사회에서는 돈이 쌓일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근대 규율사회(금욕사회)에서 인간들이 성실하고 검소한 삶을 통해 돈(자본)을 축적하게 되었고, 이는 자본주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자본주의는 소득 그 자체가 매우 커져서 생겨난 것이 아닌, 소득 대비 소비를 줄이면서 생겨난 것이다. 그저 돈이 많이 생겨나서 자본주의가 생긴 줄 알았지만, 결국 자본주의도 칼뱅을 비롯한 종교철학적 사유·실천의 결과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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