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불교에 있어서 정토종·선종은 실천적 교리를 강조하면서, 현재까지 동아시아 전반에서 최대 종파를 형성하고 있다. 이전 글 <중국에서 현지화된, 불교>에서는 인도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되어 현지화된 개략적인 과정을 언급했었다. 정토종은 염불을 끊임없이 외우기만 하면 되는 간편함을 골자로 했지만, 선종은 이러한 간편함을 넘어 깨치기만 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서울 시내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로는 조계사·봉은사를 들 수 있는데, 조계(曹溪)는 혜능의 별호에서 유래되었다. 혜능의 육조단경은 당대의 엘리트·대중 모두에게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 주돈이(성리학 시조)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혜능의 사상이 유교의 성선설과 부합되었기 때문이다.
달마로부터 시작된, 선종
중국 선종(禪宗, 선불교)은 대승불교의 한 조류로, 문자를 넘어선 경지인 선(禪)의 실천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선종 이전에도 위진남북조시대를 거치면서 청담·현학사상으로 나타난 선사상이 존재했었다. 선종은 중국인의 강한 현실주의 위에 지관·여래선 등을 수용함으로써 일상생활 속에 실현되어야 하는 생활선으로 전개되었다. 선종은 다음의 계보를 이어왔다.
1조 : 달마(達磨, 초조)
2조 : 혜가(慧可)
3조 : 승찬(僧璨)
4조 : 도신(道信)
5조 : 홍인(弘忍)
6조 : 혜능(慧能)
홍인 문하의 2대 선사로는 다음의 2개가 있는데, 오가칠종(五家七宗, 위앙종·임제종·조동종·운문종·법안종·황룡파·양기파) 은 모두 남종선에서 발전했다. 당대 말기 주류는 남종선이었다.
북종선(北宗禪) : 신수 계통
남종선(南宗禪) : 혜능 계통
520년경 달마가 중국으로 선종을 들여 왔다고 한다. 달마는 양 무제와의 불화로 북위(소림사)로 이동한 후, 9년 동안 면벽한 후에 선을 전파했다. 불교를 숭상했던 북위(北魏)가 남북조시대 화북지방 왕조들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오랫동안 존속했는데, 낙양(洛陽, 494년)으로 천도한 후에 불교가 더욱 번성했다. 담란(曇鸞)이 정토종을 세운 곳도 북위였다.
달마에게 가르침을 구하러 온 혜가는 단비(斷臂, 팔을 자름)했다는 일화가 있다. 물론 거짓말일 것이다. 어쨎든 초기 조사들의 노력으로 선종은 중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아이도 선을 깨달을 수 있는 수준에 다다랐다. 이러한 사실은 조사들이 법기를 받은 나이에서도 엿볼 수 있다. 삼조까지는 40살을 넘긴 나이에 구법한 반면, 사조부터는 법기를 받은 나이가 어려지며 도신·홍인은 각각 14세와 7세에 법기를 받았다고 한다. 당대 중기 교종들이 쇠퇴한 반면, 선종은 선가(禪家)를 넘어 종파로 크게 성장했다.
광저우(廣州)는 선종의 고장으로, 달마가 처음 발을 딛은 중국땅이면서 혜능의 고향이다. 혜능은 탁발승의 금강경 독송을 들은 후, 갑자기 깨달음을 얻어 스승을 찾아 나섰다. 672년 홍인에게 가르침을 받기 시작한 혜능은 방앗간에서 노역하면서 불과 8개월만에 의발을 전수받았는데, 의발(衣鉢)은 승려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가사(袈裟, 의복)과 발우(鉢盂, 음식을 담는 그릇)를 말한다. 당시 신수(神秀, 홍인 수제자)를 제친 혜능은 홍인 문하에서 질시·위협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16년 간을 남방으로 숨어 살았다가, 39세가 되서야 홍법(弘法, 불도를 널리 퍼트림)하기 위해 떠돌기 시작했다.
홍법 중에 법성사에 들렀는데, 마침 인종법사가 행자들에게 열반경을 설하고 있었다. 맨뒷자리에서 강연을 듣던 중에 갑작스런 바람에 절의 깃발이 펄럭이자, 행자들 사이에서는 바람이 움직였는지, 깃발이 움직였는지에 관한 논쟁이 일어났다. 이 때 혜능이 말한 다음의 현답에 인종법사는 단번에 육조임을 알아챘고, 스스로 혜능의 제자로 들어갔다.
그것은 깃발의 움직임도 아니요,
바람의 움직임도 아닙니다.
단지 두 스님의 마음이 움직인 것입니다.
혜능을 기억하는, 달콤한 인생
2005년 영화 「달콤한 인생 : A Bittersweet life」은 지하세계에서 홀로 묵직히 살아가는 2인자 선우(이병헌 분)을 그리고 있다. 어느 날 보스의 애인 희수(신민아 분)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게 된 선우는 그녀에게서 감정의 변화를 느꼈고, 이에 모욕감을 느낀 보스는 선우를 버린다. 이에 강한 배신감을 느낀 선우는 복수를 시작한다. 영화의 인상적인 부분은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서의 나레이션이다.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 뿐이다."
영화를 여러 번 돌려보면서, 철학적인 도입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도저히 마음 속에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혜능의 에피소드를 접하고 난 후, 불교적 접근이 가능했다. 선우(나뭇가지)가 느낀 감정의 변화(바람)은 마음(희수에 대한 욕망)이라고 본다. 그 동안 선우는 7년 동안 그 어떤 것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보스의 듬직한 해결사였기에, 보스는 선우의 변화를 보면서 모욕·괘씸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언제든 총부리는 방향을 돌릴 수 있으니.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우는 죽기 직전 옅은 미소를 지으며, 평온함을 느낀다. 이는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어렵게 하는 대목이다. 누구나 꿈 속에서는 멋진 수퍼히어로가 되지만, 이는 현실에서는 이뤄지지 않는다. 누구나 달콤한 인생을 꿈꾼다는 것은 그 만큼 인생은 고통이라는 반증일 것이다. 선우는 단 한번의 실수(흔들림)로 완벽했던 인생이 산산조각났지만, 어쩌면 희수를 욕망했던 그 순간이 가장 달콤한 인생이었을지도 모른다.
문자가 아닌 마음에서 답을 찾은, 혜능
혜능의 선법은 자성(自性, 자기본성)의 발견으로 일관되며, 혜능의 설법을 기록한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는 자성을 깨치는 것이 핵심이다. 자성은 모든 인간이 갖추고 있는 마음인 동시에, 현실에 있는 존재 각자의 마음이다. 부처·중생은 하나의 주체(개체적 실존)가 가진 다른 경계이지, 또 하나의 다른 주체가 아닌 것이다. 혜능은 부처님으로부터 내려온 의발을 더 이상 전하지 않았다.
달마의 예언대로 갠지스강의 모래알 만큼 많은 법기(法器, 불도를 수행할 수 있는 소질이 있는 사람)들이 중국에 등장하면서, 선종이 널리 퍼졌다. 혜능은 쌍봉대계(雙峯大溪, 쌍계)에 보림사(현 남화사)를 세워 36년 동안 법을 펼쳤는데, 이 곳에 혜능의 진신이 모셔져 있다. 또한 과거 인근에 조숙량(조조 현손)을 비롯한 조씨 일가들이 모여 사는 조후촌이 있었는데, 그 마을 입구에는 시내가 흘렀다고 한다. 조계(曺溪)산는 조숙량·쌍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산이름이다. 혜능은 보림사에서 다음과 같이 즉심즉불(卽心卽佛, 마음 자체가 부처)을 제시함으로써, 중생에게도 부처가 되는 길이 열렸다.
내 마음에 부처가 있으니
스스로 만약 불심이 없다면
그 어디에 진불이 있겠는가?
불교수행법 중에는 돈오점수(頓悟漸修)가 있는데, 이는 단번에 진심의 이치를 깨친 뒤에 번뇌를 제거해 가는 선종수행법이다. 돈오(頓悟, 단번에 깨달음)과 점수(漸修, 점진적 수행)는 우열관계가 아닌 상호의존적이라고 봐야 한다. 남종 혜능은 돈오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반면, 북종 신수는 오랜 기간 수행이 필요한 점수를 중시했다. 당연히 민생에게는 단 하루만에라도 성불할 수 있는 돈오설이 인기가 많았다.
혜능은 과거 가난했고 글을 몰랐기에, 불립문자·직지인심을 통한 성불을 주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는 깨달음은 문자를 통하지 않기에, 문자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선종은 불립문자를 강조했지만, 경전도 중시했다. 마오쩌둥은 육조단경을 「노동인민의 불경」이라고도 했는데, 이는 평등사상과 연결시켜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불교가 훗날 유학은 물론 현대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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