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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법

아파트 내 손해배상, 안전성

by Spacewizard 2025.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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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다보면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무사한 경우도 있지만, 상해를 입거나 심지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사고의 순간은 찰나이지만, 몇 배속으로 천천히 재생하듯 생생히 기억하곤 한다. 마치 뇌(아님 우주) 속에서 인생의 클라이막스를 조명하듯이. 암튼 인생에서 사고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가오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 보험을 들고 소송을 준비한다. 현대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손해는 불법행위로 간주되어,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민법 제750조와 제758조 제1항에서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공작물 점유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점유자가 손해의 방지에 필요한 주의를 해태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소유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손해배상책임을 헷지하기 위해, 개인과 공작물 점유자·소유자는 각종 보험에서 배상책임담보을 담고 있다. 배상책임보험 중에서도 사례가 많은 시설이 아파트(특히 어린이놀이시설)일 것이다. 이전 글 <반복되는 부실의 역사, 아파트>에서는 김현옥 서울시장 이후 서울시민의 주거형태가 판잣집에서 시민아파트로 빠르게 전환되었고, 지금은 아파트가 한국인의 주력 주거형태로 자리잡았다.

 

아파트는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 상으로 어린이놀이시설배상책임보험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린이놀이시설에서 다치더라도 배상을 받기는 매우 어려다. 우선 피해자는 시설의 보험가입 여부를 알기 어렵고, 보험배상을 받을 수 없다면 결국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설관리인·보험사는 기구문제나 관리소홀이 없었다는 주장을 하면서, 배상할 의지가 없음을 단호하게 내비치는 경우가 많다.

 

보상과 혼동되는, 배상

 

보상·배상과 손실·손해은 혼동하기 쉽지만, 그 의미에서는 다음과 같이 큰 차이가 있다.

 

보상(補償, 도와서 갚음) : 타인에게 끼친 손실을 갚는 것

배상(賠償, 물어줘 갚음) :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 자가 그 손해를 물어주는 것

 

손실(損失) : 이득을 얻거나 잃게 될 기로에서 잃어버린 상황

손해(損害) : 불법적인 원인으로 인해 물질·정신에 피해를 입는 상황

 

(償, 갚을) 행위의 법적 적합성에 따라 단어가 다음과 같이 조합된다.

 

손실보상 : 타인에 끼친 피해가 불가피한 적법행위로 인한 것

손해배상 : 타인에 끼친 피해가 불법행위로 인한 것

 

위법·불법도 같은 의미로 흔히 쓰이지만, 엄밀히 차이가 있다.

 

위법 : 법률에 위반하는 행위

불법 : 법률에 위반하는 고의 또는 과실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행위

 

위법성 조각사유에 의해 위법성이 탈락하면 무죄가 되는 반면, 불법은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위법성조각사유(違法性阻却事由)는 구성요건의 해당성이 성립하나 실질적으로 위법이 아니라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유를 의미하며, 조각(阻却, 막혀 물리침)은 방해·물리침을 의미한다.

 

보험배상은 보험사가 약관에 기준하여 합의금액을 산정하는데, 일반적으로 약관은 피해자에게 불리한 경우가 많다. 피해자가 보험사의 제시금액에 만족하지 못할 경우, 소송을 통한 판결금액이 다소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소송은 시간·비용이 소모되기에, 사전에 판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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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하게 여겨지는 하자, 안전성

 

2017년 9월 아파트 내 놀이터에서 남자아이가 떨어져 다친 사고에 대해, 재판부는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와 보험사에 손해배상책임을 물었다. 원고는 사다리 형태로 된 놀이기구에 올라가다가 낙상하였는데, 왼팔골절 등의 상해를 입었다. 부모가 법정대리인으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였는데, 원고가 미성년자였기 때문이다. 보험사는 다음의 주장을 하면서, 입대의의 손해배상책임이 없으며 보험계약에 따른 보상책임도 다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 놀이기구의 설치·보존의 하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원고의 과실에 의한 것

구내치료비 특별약관에 따라 원고에게 기왕치료비 100만원 가량을 지급

 

아파트단지종합보험계약에는 어린이놀이시설에 대한 대인배상·시설소유배상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보통약관과 특별약관(구내치료비)에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보험기간 중 피보험자(대표회의)가 소유·사용 또는 관리하는 어린이놀이시설 및 그 시설의 용도에 따른 업무 수행으로 생긴 우연한 사고로 인해 대표회의가 피해자의 신체에 장해를 입혀 법률상의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함으로써 입은 손해를 보험사가 보상하도록 한다.

 

보험기간 중 보험증권에 기재된 어린이놀이시설 구내에서 발생한 급격하고도 우연외래의 사고로 그 시설물의 이용자가 입은 상해손해에 대한 치료비를 보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구내치료비 특별약관이 있는 경우, 놀이시설에 하자가 없더라도 사고가 발생하면 치료비를 보험금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 이전 글 <아는 만큼 보이는, 배상책임보험>에서 배상책임보험 내에 구내치료비 담보에 가입된 상태라면 구내치료비 한도금액 만큼은 도의적으로 보상이 가능하다고 언급했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판시하면서, 입대의·보험사의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흔들리는 사다리로서 높이가 약 1.5m인 이 사건 놀이기구는 신체기능이 성숙하지 못한 어린이들이 손을 놓치거나 미끄러져 떨어지는 사고가 충분히 예상됨에도 추락시 2차적으로 잡을 수 있는 구조물이나 충격완화를 위한 안전장치를 설치하지 않아 그 용도에 따라 통상 갖춰야 하는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하자가 존재했고, 이로 인해 원고가 상해를 입은 사실이 인정된다... 따라서 이 사건 놀이기구의 점유자인 아파트대표회의는 원고들에 대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고, 피고 보험사는 이 사건 보험계약에 따라 원고들에게 위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원고도 자신의 키보다 높은 놀이기구를 오를 때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고, 또한 원고의 부모도 안전에 대한 변별력이 부족한 원고의 보호자로서 이 사건 놀이기구의 위험성 등을 고려해 원고가 사고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그 주변에서 지켜보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음에도 위와 같은 주의를 제대로 기울이지 않은 잘못이 있으며, 이와 같은 과실들이 이 사건 사고의 발생 및 손해의 확대에 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보험사의 책임을 50%로 제한했으며, 원고·보험사는 이에 불복하여 각 항소를 제기했다. 이전 글 <다양하지만 하나도 모르는, 보상항목>에서는 과실상계에 대해 설명하면서, 과실비율은 10%p 단위로 설정된다고 언급했었다. 이 사고 사건에는 또 다른 쟁점이 있었다. 미끄럼틀에서 놀던 원고가 다른 남자아이 2명의 괴롭힘을 피하여 사다리꼴 형태의 놀이기구로 올라가다 낙상한 것이므로, 다른 남자아이의 어머니(감독의무자)도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판결하면서 이에 대한 청구를 기각했다.

 

미끄럼틀에서의 행위와 이 사건 놀이기구에서 떨어진 사고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보기 어렵고, 원고가 이 사건 놀이기구에 오르는 도중 다른 남자아이가 원고에게 소리를 쳤다거나 다른 행위로 인해 원고가 이 사건 놀이기구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며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손해배상 판결문에서 보이는 문구는 대법원 판례를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관련 대법원 판례는 다음과 같다.

 

공작물의 설치·보존상 하자라 함은 공작물이 그 용도에 따라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와 같은 안전성의 구비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당해 공작물의 설치·보존자가 그 공작물의 위험성에 비례하여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방호조치의무를 다하였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피해액(손해배상금)이 클 것으로 예상될 경우에는 보험사·입대의를 공동피고로 하는 것이 좋은데, 왜냐하면 생각보다 보험사가 부담하는 한도가 낮기 때문이다. 자칫하다가는 소송을 2번 해야 할 수도 있는 수고스러움을 덜어야 할테니. 물론 보험사만을 피고로 한 소송에서도 입대의(보험가입자)와 긴밀한 소통은 하고 있으니, 2번의 소송에서 결과가 달라질 이유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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