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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금융투자

[서울] 반복되는 부실의 역사, 아파트

by Spacewizard 2024.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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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다가오면서 올 한해의 부동산시장을 정리하고, 내년의 시장상황을 예측하는 보도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주택가격은 경제성장, 매입자금(대출·전세가율), 공급량(신규분양·재고출회) 등의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하면서 결정된다. 2023년 신축아파트 분양가 상승이 뚜렷했으며, 그 풍선효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구축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고 한다. 또한 2022년부터 계속된 PF부실로 2023년 상반기에는 중소시공사의 기업회생 신청이 증가했고, 연말에는 한 대형시공사가 워크아웃을 신청하였다. 이전글 <금리와 인플레에 무너진 다리, 브릿지론>에서는 2022년 이후 금리인상, 건축원가 상승 및 주택경기 침체 등이 동시에 맞물리는 최악의 국면에 접어들면서, 브릿지론 연장과 본PF 전환에 실패한 사업장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언급했었다. 또한 <점점 현실화되는 위험의 전염, PF>에서도 2022년 상반기부터 시작된 원자재가격(철근·시멘트 등)의 상승은 시행사업의 수지를 악화시켰고, 건축원가 상승분을 분양가에 반영할 수 없는 한 중장기적으로 아파트 공급부족이 뒤따를 수도 있다고 언급했었다.

 

주택공급 부족을 가져올 인상된, 건축원가·분양가

 

2023년말 부동산개발시장에서 가장 큰 부담을 가지는 시장주체는 부동산신탁사일 것이다. 책임준공형관리형토지신탁(책준관토) 구도의 사업에서 공사가 중단되거나 사용승인 행정절차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시공사의 사업비 조달역량 부족이 그 원인이다. 부동산신탁사는 정해진 책임준공기한(책준기한) 내에 사용승인을 부득하게 되면, 대주에 대한 손해배상의무를 가지게 된다. 물론 부동산신탁사가 대주와의 신뢰관계·소통을 바탕으로 책준기한을 연장시킨다면, 다시 손해배상청구에 대한 기한이익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대주가 손해배상을 언제든지 청구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2023년에 이어 2024년까지도 부동산신탁사는 PF부실사업에서 부족한 유동성을 보충해야 할 것이며, 그 이후에는 대주의 손해을 보전해줌으로써 영업손실을 확정하는 단계를 거치게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아파트가격을 인상시킨 가장 주된 요인은 물가상승이었는데, 이는 화폐발행·대출총량의 증가가 결국 화폐가치의 하락을 초래하면서 명목가격을 높이기 때문이다. 2023년 한해 동안 서울아파트 평균 분양가격이 44.6% 가량 오른 것으로 조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4분기 평균 3.3㎡(평)당 분양가가 1분기(2,593만원) 대비 +1,157만원 상승한 3,750만원이라고 한다. 이 조사내용이 맞다면, 2023년은 평당 분양가가 2천만원대 중반에서 3천만원대 후반으로 업그레이드된 역사적인 한해로 기억될 것이며, 서울아파트 전용 84㎡(33평형) 평균 분양가는 8.5억에서 시작하여 12억원대까지 상승한 것이다.

 

수도권·지방도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분양가가 상승세를 보인 것은 분명하다. 최근 1~2년 동안 진행된 원자재가격·인건비 폭등이 분양가 급등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문제는 향후 예정된 규제(환경·안전)로 인해 공사기간 연장이 고착화되면서 분양가를 상방압력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2024년에는 <2030 국토교통 탄소중립 로드맵> 따른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 의무화와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공동주택 층간소음 대책> 따른 규제가 실시될 예정이다.

 

2023년 매매된 수도권아파트 중 구축(준공 10년 이상)은 거래비중이 증가한 반면, 신축(준공 10년 이하)는 거래가 줄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신축이 선호도가 크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으로 인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상대적으로 저렴한 구축이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가상승에 의해 지지되는 높은 분양가가 매수대기자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온 시기였을 수도 있다. 공급부족도 주택가격의 하방경직을 강화하는 주된 요인이다. 잊혀질만 하면 한번씩 등장했던 2024~2025년 주택공급 부족 전망이 2024년을 목전에 두고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라서, 향후에도 신축의 희소성은 높은 상태를 계속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문재인 정권에서 급등한 주택가격에 당황한 무주택자들이 2020~2021년 무리한 대출을 레버리지로 주택매입을 서둘렀다. 하지만 2022년 들어 금리인상과 주택가격 하락에 부담을 느낀 차입매수자들이 이자비용 부담에 손절(급매)하면서, 신축·구축 모두 주택가격이 하락한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신축이 하방경직성이 높기 때문에, 2023년에는 하락율이 높았던 구축이 매력적인 투자처로 비춰졌다.

 

서울에 변화를 가져온 불도저, 김현옥

 

1966년 존슨 미국 대통령의 방한 당시, 전 세계로 방영된 서울시청 주변의 슬럼지역의 모습은 <가난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충분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서울시장 김현옥은 박정희에게 서울 도심부의 적극적인 개발의지를 내쳤고, 종로 주변의 판자촌을 철거하고 2개의 고층건물(낙원상가·세운상가)를 건립했다. 1968년부터는 남산 주변에 힐탑아파트(외국인 전용)와 공무원아파트가 들어서게 된다. 고층아파트의 입지로 남산을 택한 이유는 경부고속도로에서 한남대교를 건너 서울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그 위용을 드러내고, 기술력을 과시하려는 목적이 컸다고 한다. 그 시절 누구나 그랬듯, 박정희에게 잘 보이려는 김현옥의 현시욕구가 반영된 것이다. 현시욕구(exhibition needs)는 자기의 우수성을 타인에게 나타내 보이거나 과시하려는 욕구로, 인정욕구에서 비롯된다. 

 

성수JC에서 동부간선도로(장암방면)를 타고 가는 길에 큰 언덕을 덮고 있는 한양대학교의 전경이 펼쳐지는데, 개인적으로 그 꼭대기에 자리잡은 도서관(백남학술정보관)이 매번 눈에 띈다. 이는 높은 지대에 세워진 건물이 그 규모에 비해 더 웅장해보이는 현시성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현옥은 엄청난 실행력을 가진 인물로, 별명은 <불도저 시장>이었다. 1947년 육군사관학교 3기로 임관하여, 1961년 5.16쿠데타에 대령으로 가담하여 부산시정을 장악했다. 1962년 부산시장으로 임명된 후 4년간 재직한 후, 1966년 서울특별시장에 임명된다. 김현옥에 대한 평가는 손정목의 저서 <서울도시계획이야기>를 인용함으로써 대신하겠다.

 

성석린이 초대 한성판윤에 임명된 것이 1935년 6월 13일이었으니, 1995년 6월 관선 마지막 최병렬까지 모두 1,425명의 한성판윤·경성부윤·서울특별시장의 자리를 거쳤다. 그들 1,425명 중에서 가장 출중한 인물이 김현옥이었다. 재임 4년간 실로 엄청난 일을 저지른 인물이었다. 숱한 지하도를 팠고, 140개가 넘는 보도육교를 놓았으며, 청계고가도로를 그가 만들었다. 남산에 두 개의 터널을 뚫었고, 불광동길·미아리길도 그가 넓혔다.

 

한강개발·여의도개발·강남개발도 처음 시작한 것도 그였다. 400동의 시민아파트를 지었고, 광주대단지도 그가 만들었으며, 봉천동·신림동·상계동 등지에 거대한 불량지구 마을도 그가 만들었다. 한마디로 일에 미친 사람이었다. 숱하게 많은 공약을 남발했으며 적잖게는 공약(空約)으로 끝났다. 하루에 많을 때는 10건이나 되는 특별지시를 내렸으며, 시청직원들은 이 특별지시를 처리하는데 밤낮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당연히 서울 도시계획에서 엄청나게 많은 발자취를 남겼다.

 

주택부족의 해결책에서 재앙이 된 이유, 부실공사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로 접어 들면서 농업을 쇠퇴했고, 농촌인구는 기회를 찾아 도시로 이동하였다. 인구가 급증하던 서울에서 주택가격은 주택부족으로 인해 급등했고, 농촌에서 올라온 가난한 이들이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고가였다. 한성을 조선시대 이후로 주택이 충분한 적이 없다. 이전에는 주거환경으로 열악하여 접근이 힘들었던 고지대·산비탈·하천주변에 무허가 판자촌을 형성되었는데, 서울시는 도시계획에 저촉되는 판자촌을 합법적 주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주거인프라(상하수도·전기·전화·치안·의료·소방 등)가 열악한 판자촌은 범죄·질병·화재의 발생비율이 높은 도시 내 취약공간이 되었다.

 

종로와 남산에서 아파트 건설경험과 자신감을 쌓은 김현옥은 서울시민의 주거형태를 판잣집에서 시민아파트로 빠르게 전환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는 1969~1971년 3개년 동안 서울 달동네에 시민아파트 10만호를 건립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11평 규모의 시민아파트는 방 2개와 마루·부엌으로 설계되었고, 부대설비로 연탄난방·공동화장실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한시라도 빨리 아파트를 선보이려 했던 조급함은 부실공사로 이어졌는데, 지질검사·측량을 생략하였고 타사업지의 설계도를 그대로 차용했던 것이다. 1969년 와우산 중턱의 60도 경사에 와우아파트가 준공되었는데, 1970년 4월 1개동이 붕괴된다. 준공시점에는 겨울이라 땅이 얼어서 하중을 버틸 수 있었지만, 땅이 녹으면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 내외도 와우아파트를 둘러보면서 별다른 조짐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와우아파트는 설계비를 아끼기 위해 금화아파트 설계도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당시 예산이 부족했던 서울시가 책정한 건축비는 일반적인 건축비의 절반도 안되는 수준이었으며, 시공사는 부족한 건축비를 메꾸기 위해 건축자재(철근·시멘트)를 덜 투입하는 저가공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선정된 건설사가 무면허업자에게 하청을 넘기면서 건축실행원가는 더 내려갔다. 게다가 김현옥이 제시한 아파트 건설기간은 6개월이었다고 하니, 예산이 충분했다고 한들 날림공사를 피해갈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김현옥은 와우아파트 사고로 사퇴하게 되었는데, 치밀한 준비·계산 없이 불도저처럼 밀어붙였으니 자업자득으로 볼 수 있다.

 

2023년 4월 인천 검단의 LH(한국토지주택공사) 공공아파트 지하주차장 슬라브가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17년부터 LH는 공공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무량판 구조는 수평재인 대들보(beam) 없이 수직재인 기둥(core)·슬래브(slab)가 바로 연결되는 건축구조이다. 이 구조는 보가 없는 만큼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충격·하중에 취약할 수 있다. 건축공사는 지상골조보다 지하터파기의 공사단가가 높은데, 특히 암과 물이 많은 국내 지질구조상 터파기 단계에서의 비용절감 노력을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그래서 LH도 보를 없애고 터파기의 층고를 낮출 수 있는 무량판 구조를 도입했을 것이다.

 

문제는 설계·시공상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무량판 구조는 전단보강근의 누락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 철저한 현장관리·감리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민간아파트는 이러한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전에 공장에서 전단보강근을 배근한 구조물을 제작했었지만, LH는 위험절감 노력은 소홀히 한 채 비용절감이라는 과실만 취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많은 공공기관들이 부족한 예산과 높은 부채라는 경영상 어려움을 안고 있기 때문에 누가 LH의 사장·관리자·실무자의 자리에 있었더라도 붕괴사고는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50여년 전 서울시가 발주한 와우아파트 붕괴사고 사례를 포함한 '공공개발에서의 역사적 실패'를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2023년 현재에도 대형시공사들이 준공기한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공정을 앞당기거나, 물가상승에 따른 예산부족으로 건축자재를 덜 투입함으로써 건물이 붕괴되는 소식을 가끔 접한다. 50여년 전과 별반 달리 보이지 않는 이런 소식을 들을 때면,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은 고금을 불문하고 비슷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1970년 4월 서울시장을 자진사퇴한 김현옥이 1971년 10월 내무장관으로 발탁된 부분에 대해서는 쿠데타 공신 혜택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앞서 손정목 교수가 언급한 김현옥의 평가대로라면 어느 인사권자라도 김현옥은 그냥 두기 아까운 인재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군인정신만 조금 내려놓는다면 더 좋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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