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진흥왕1 독특한 성풍습을 가진, 신라 조선 중기까지 모계사회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최근까지 유교적 부계전통에 익숙했던 탓에 긴가민가하곤 한다. 하지만 고대사회의 문란한 성풍속은 친부를 특정하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이는 자연스럽게 모계 중심의 가계구조를 갖게 했을 것이다. 이전 글 수컷을 곁으로 이끈, 친자확인>에서는 인류는 수컷을 곁에 붙잡아 놓기 위해 발정기를 숨기는 진화를 선택했다고 언급했었다. 하지만 현대의 성윤리까지 다다르기 전까지, 발정기만 숨긴다고 남녀의 성에 대한 인식이 깔끔하게 정리되지는 않았다. 신라시대 일부일처제·처첩제의 공식적인 구분이 있었음에도, 독특한 성풍습(색공·마복자)이 있었다. 이는 현대인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복잡한 족보를 만들어 냈다. 물론 유교가 전래되기 전이라, 여자가 여러 남자들과 정을 통하.. 2025. 1. 30.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