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구는 함주(함경남도) 출신으로, 1931년 영신학교를 졸업한 후 함흥물산에 입사했다. 1938년 대양공사(식품도매업)을 설립하면서 독립했는데, 함경도 일대의 설탕·밀가루를 도매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1941년 일제의 전시기업청산령으로 강제해산되었는데, 이후 1942년 함흥식량영단에서 근무했다. 1947년 월남한 이양구는 동양식량공사를 설립한 후, 제과원료(수입설탕·밀가루)를 판매했다. 1951년 이양구는 삼양물산공사를 설립하여 설탕을 직접 수입했다.
1953년 8월 이병철은 부전동(부산)에서 제일제당을 설립했는데, 전쟁 후 식량난에 대응한 삼성그룹 최초의 제조업체이다. 1953년 11월 부산공장(제일제당)이 준공되었다. 참고로 1954년 제일모직공업(훗날 제일모직)은 대구에 첫 모직공장을 준공한 후, 1968년 울산공장을 완공했다. 1993년 제일제당은 삼성그룹에서 분리되면서, CJ제일제당이 되었다.
1954년 이양구는 이병철과 공동으로 설립한 한국정당판매를 통해 제일제당과 독점판매계약을 성사시켰다. 제일제당(이병철)이 설탕을 제조하면, 한국정당판매(이양구)가 유통을 맡았던 것이다. 이양구는 설탕왕이라 불렸다. 한국정당판매는 1960년대 초반까지 제일제당 설탕을 독점적으로 유통했으며, 1964년 한국양회공판으로 변경되었다. 이양구는 한국정당판매를 통해 동양그룹 기반을 마련했으며, 이병철은 제당사업을 안착시킬 수 있었다. 양회(洋灰, 서양의 석회)는 시멘트를 의미하는데, 당시 석회는 한회라 불렀다. 1964년 다음의 삼분폭리사건에서 양회 논란도 있었다.
제일제당 : 설탕
대한제분 : 밀가루
동양시멘트·대한양회 : 양회
1955년 이양구는 동업자(이병철·배동환 등)과 동양제당공업을 설립했다. 1956년 동양제당공업은 용산에 있던 풍국제과를 인수한 후, 사명을 동양제과공업으로 변경했다. 1962년 사명을 오리온제과공업으로 변경한 후, 2년 후인 1964년 다시 동양제과공업으로 변경했다. 1974년 오리온 초코파이를 출시되었으며, 1986년 사명을 동양제과로 축소했다. 2001년 동양그룹에서 계열분리되면서 오리온그룹을 출범했다가, 2003년 소비자에 친숙한 브랜드명을 살려 사명을 오리온으로 변경했다. 이전 글 <합병으로 성장하는, 메가박스>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일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기업] 최초의 민족자본 식품회사, 해태제과 (0) | 2026.08.08 |
|---|---|
| [역사] 연기에서 시작된, 향수 (0) | 2026.08.05 |
| [교통] 레일을 고정시키는, 침목 (1) | 2026.08.02 |
| [문화] 달리 따스했던, 개 같은 내 인생 (0) | 2026.08.02 |
| [지구] 통계적으로 임박한, 대지진 (1) | 2026.08.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