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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정치공작의 중심, 요정

by Spacewizard 2026.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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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에 요정들이 성행하는 가운데, 1903년 9월 공무원(전환국 기수)이었던 안순환 명월관(明月館)을 오픈했다. 2층 양옥 형태였던 명월관은 황토현(현 동아일보 사옥, 세종대로 사거리 남동쪽)이었다. 1907년 대한제국 궁내부가 폐지되면서 황실 소속이었던 요리사를 고용하면서, 조선요리(한정식)을 개발했다. 명월관 이전에도 요릿집은 여러개 있었지만, 수라에나 오르던 음식을 일반에게 제공한 곳은 명월관 뿐이었다고 한다. 1908년 대한제국은 외식사업으로 성공한 안순환을 전선사 장선으로 채용했다. 전선사(典膳司)는 궁중음식 담당부서였고, 장선(掌膳)은 전선사의 책임자(정6품)였다.

 

1909년 관기제도가 폐지되면서, 궁중기녀들도 2년 전 궁중요리사처럼 명월관으로 흘러 들었다. 관기제도 폐지로 관청에서 풀려난 기생들은 권번(사설기생조합)에 적을 두고 있다가, 고급요릿집(명월관·국일관·장춘관·고려관 등)에서 부르면 출장을 나갔다. 특히 명월관에는 인물·기예가 뛰어난 명기들이 많아, 유명인사들이 자주 찾는 사교무대가 되었다. 당시 기생은 술자리에서 연주·춤·노래를 공연하고 시문을 지어 흥을 북돋는 역할을 하였다. 비싼 가격을 감당할 수 있는 부유층 남성들이 고급요릿집을 주로 이용하다보니, 요정은 서민남성들에게 선망의 공간이었다. 명월관은 한국전쟁 중에 화재로 전소하게 된다.

2층 양옥식의 명월관

공작정치의 공간, 또 다시 전성기

한국전쟁 이후 현대화된 모습의 요정이 생겨나면서, 요정문화는 다시 전성기를 맞이한다. 다만 이 시기에는 기예로 흥을 돋우던 권번기생이 아닌, 술접대를 위주하면서 희롱의 대상이 되는 화초기생들이 주류였다. 정숙했던 요정의 본래 모습이 차츰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5.16 쿠데타 성공 이후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은 민정이양에 대비하여 비밀리에 민주공화당을 만들고 대학교수들을 창당요원으로 선발해 창당교육을 실시했는데, 그 비밀장소가 춘추장(종로 낙원동)이었다. 이전 글 <조선 기생과 일본 접대가 만난, 요정>에서 일본의 개혁세력들이 비밀회동 장소로 게이샤의 찻집을 이용했다고 언급했었다.

 

요정은 비밀스럽고 은밀한 정치공작의 장소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정치판의 비밀·고급스런 정보가 오가는 공간, 출처가 베일에 싸인 검은 자금이 거래되는 공간, 그리고 목적이 성사된 이후에는 술자리와 함께 잠자리로 이어지는 안가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요정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일절 바깥으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전 글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의 공간들>에서 언급한 중앙정보부의 철저한 감시와 노련한 마담의 엄한 입단속 지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요정이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편안한 비밀공간으로 자리 잡자, 1960~1970년대 요정정치는 왜곡된 한국정치의 한 전형으로 굳어져 갔다. 그 시절 요정에는 정치인 외에도 당대의 실세(군장성·고위공직자·재벌 등)이 모여서 협잡·야합과 향응·접대를 통한 부당거래를 나눴는데, 세간에는 아래의 우스갯소리가 나돌았다고 한다.

 

역사는 에 이뤄지고, 

정치는 요정에서 이뤄진다.

 

그러던 차에 <정인숙 사건>이 터지면서, 베일에 가렸던 요정의 실체가 알려지게 된다. 요정의 사회적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커졌지만, 그럴수록 요정은 은밀한 방식으로 더 넓게 퍼져나갔다. 1970년대 서울의 요정은 비밀요정을 포함해 100여 곳에 달했고, 그 중 접대부가 50명이 넘는 대형 요정은 10여 개에 달했다고 한다. 1980년대 들어 경제성장·유화조치(통행금지 해제 등)로 룸살롱(현대판 요정)이 대거 등장했는데, 이 때부터는 룸살롱에서 비밀회합이나 불법청탁이 이뤄졌다고 한다. 1990년대 이후는 룸살롱의 변형들이 등장하고 사라지고를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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