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신라에서 왕위는 성골만 오를 수 있었다. 마지막 남자성골은 김백정(제26대 진평왕)이었으며, 이후 2명의 성골여왕(선덕·진덕)이 있었다. 덕만(제27대 선덕여왕, 진평왕 장녀)은 신라 최초의 여왕으로, 성골자식을 낳고자 노력했지만 고령으로 인해 실패한다. 이후 선덕여왕의 유언에 따라 승만(제28대 진덕여왕, 선덕여왕 사촌)이 즉위했으나, 진덕도 성골자손을 보지 못했다. 647년(진덕여왕 즉위년) 비담의 난이 발생했지만, 김춘추·김유신은 난을 진압하면서 왕권을 안정시킴과 동시에 정권핵심으로 부상했다.
진덕여왕이 성골체계의 마지막 왕이 되었고, 이후 김춘추(제29대 태종무열왕)는 진골 출신으로는 최초로 왕위에 오른다. 924년 김위응(제55대 경애왕)이 왕위에 오르던 당시, 후삼국(고려·후백제·신라)의 대립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특히 신라는 국력이 크게 쇠한 혼란기였다.
크게 패배한 왕건, 팔공산
927년(신라 경애왕 4) 경주를 기습한 견훤(후백제)는 포석정에서 경애왕에게 자결을 강요했고, 신라조정은 왕건(고려)에게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다. 포석정은 신라의 지배계급이 많은 계곡의 물을 끌어와 곡수를 만들고,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시를 읊으면서 노는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이 행해지던 공간이다. 중간에 술잔이 멈추는 일이 없도록 벽면을 매끄럽게 가공처리했다고 한다.
왕건은 신라를 지원하기 위해 1.5만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남하하던 도중, 공산(公山)에서 견훤의 기습을 받아 대규모 전투를 벌였다. 이를 공산전투(公山戰鬪, 공산동수전투)라 하며, 여기서 동수(棟藪)는 현재의 지묘동(대구 동구) 일대였다. 이전 글 <대구 2차 경전철, 엑스코선>에서는 대구 봉무동에 롯데아웃렛이 위치한 신도시 이시아폴리스를 언급했었는데, 과거 동수는 이사아폴리스 바로 북쪽지역(연경지구 일부 포함)이었다.
견훤의 병력(2만여명)은 왕건의 병력보다 5천명 가량 많았고, 병력에서 열위였던 고려군은 대패했다. 왕건은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지만, 왕건을 호위하던 다음 8명의 장수가 전사하면서 기존의 지명(공산)이 팔공산(八公山, 8명의 장수)으로 바뀌었다는 구전도 있다.
신숭겸
김락(김낙)
김철
복지겸
전이갑
전의갑
홍유인
전락(내지 호원보, 손행)
이전 글 <국적이 변화한, 화교>에서 공산전투에서 8명의 장수가 순절했고, 그 중 호원보가 호(扈, 뒤따를)씨 시조라고 언급했었다. 경애왕 다음으로 왕위에 오른 김부(경순왕)는 신라의 마지막 왕이다. 공산전투로부터 3년이 지난 930년, 병력을 재정비한 왕건은 안동·고창 등지에서 견훤을 격파하면서 후삼국 통일의 기반을 다졌다. 935년 김부(마지막 제56대 경순왕)은 왕건에게 신라를 넘기면서, 고려로부터 왕호(낙랑왕)와 작호(정승공)이라는 작호를 받았다. 경순(敬順)은 고려 조정으로부터 부여 받은 시호이다. 약 1천년 후에 일본에게 조선을 넘기면서 막대한 재력과 작위를 받은 이씨왕족과 고관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신라를 평화롭게 흡수한, 고려
경순왕은 고려 개성에서 40여년의 여생을 평화롭게 보내다가, 978년(고려 경종 3) 80세 가량의 나이에 사망했다. 경순왕의 행보는 아들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신라의 항복에 반대하던 마의태자(경순왕 장남)은 금강산으로 들어갔고, 범종(경순왕 차남)은 화엄사 승려가 되었다고 한다. 왕건은 경순왕에게 최대한 예우를 해줬는데, 심지어 자신의 딸(9녀)과 경순왕을 혼인시키기도 했다. 경순왕의 능(陵)은 경주 밖에 위치한 유일한 신라왕릉이다. 원래 경주에 능을 조성하려 했으나, 운구가 임진강 북안의 고랑포(高浪浦)에 이르렀을 때 고려왕실에서 다음의 지시를 내린 것이다.
왕족의 능은 개경 100리 밖에 쓸 수 없다
결국 경순왕릉을 경기도 장단(현 연천군 백학면)에 조성하게 되었는데, 경순왕은 죽어서까지 신라왕이 아니었다. 참고로 고려시대 고랑포는 무역중심지로, 장단도(長湍渡)라 불렸다. 임진왜란·일제강점기에도 고랑포는 군사적·경제적으로 중요한 거점이었는데, 고랑포 여울은 대규모 병력이 도강하기 적합했기 때문이다. 여울은 강·바다에서 폭이 넓고 수심이 얕은 부분으로, 물살이 센 구간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이다. 한자로는 탄(灘)이다. 쉽게 말해 물이 빠르게 흐르며 졸졸 소리가 나는 구간이라 보면 된다. 이전 글 <잠실과 함께 쓸모 있어진, 탄천>에서는 양재천 상류를 공수천이라 불렀고, 탄천과 만나는 하류갯벌을 학탄(학여울)이라 한다고 언급했었다. 임진강 고랑포 주변의 8개의 절경을 고호팔경(皐湖八景)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고(皐)는 못·늪을 의미한다.
조대모월(釣臺暮月) : 낚시터 바위 위에 비치는 밤 달빛
지탄어화(芝灘漁火) : 자지포 여울에서 밤고기를 잡는 어선의 등불
미성초월(嵋城初月) : 자미성(호로고루) 위로 떠오르는 초생달
괘암만하(掛岩晩霞) : 고야위(고랑포 동쪽의 큰 바위)에 비친 저녁노을
평사낙안(平沙落雁) : 장좌리(고랑포 대안)의 모래벌에 앉은 기러기 떼
석포귀범(石浦歸凡) : 저녁에 돌거리에서 고랑포 선창으로 돌아오는 돛단배
적벽단풍(赤壁丹楓) : 장단석벽 좌우로 펼쳐지는 가을 단풍
나릉낙조(羅陵落照) : 경순왕릉 위에 비치는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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