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반

기술발전으로 형체가 없어진, 레이블

by Spacewizard 2023. 5. 28.
반응형

애초 음반 중심부의 정보표시, 레이블

원통형 축음기를 거쳐, 원반형

20세기 초반 레이블은 주로 형성된, 영국

계속된 기술혁신, 전기녹음·라디오·메모리·음질

국내 대형기획사들의 경영전략, 멀티레이블

[Shorts] https://www.youtube.com/shorts/n55pcyEDLY8

 

1980년대 시골의 할머니댁에 놀러가면, 삼촌방에는 꽤 근사한 전기축음기(전축)과 수 많은 LP들이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린아이의 눈에는 턴테이블 위를 돌아가는 검은 원반에서 어떻게 음악이 흘러 나오는지도 궁금했지만, 원반들마다 중앙 부위에 부착된 다양한 라벨 디자인들도 눈을 끌었다. 레이블(Label) 용어가 음악산업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을 때, 음반(record, 레코드)의 중심 부분에 여러 정보를 표시한 원형의 물리적 형태를 의미했다. 여기의 정보에는 음악가의 이름, 앨범 제목, 녹음된 곡명,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레코드를 제작한 회사의 이름이 포함되었습니다.

 

과거에도 레이블은 음반제작사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여겨지기는 했지만, 음악산업이 성장하면서 음반제작사 자체를 지칭하게 되었다. 현재의 레이블 개념은 연예인(가수에 국한되지 않음)을 발굴하고 계약하며, 제작, r마케팅, 배포, 그리고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오늘날의 레이블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녹음장치인 축음기의 등장과 발전배경을 우선 알아야 한다.

 

소리를 기록하는 시대의 시작, 축음기

 

최초로 소리를 기록하고자 한 사람은 프랑스 발명가 에두아르 레옹 스콧 드 마르틴(Édouard-Léon Scott de Martinville)였는데, 1857년 진동판에 붙인 첨필로 종이 위에 파형을 기록하는 장치인 포노토그래프(Phonautograph)를 발명하였다. 이 장치의 특징은 기록만 가능하고, 재생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후 20년이 지난 1877년 토머스 에디슨은 원통(cylinder)형 레코드인 포노그래프(Phonograph)를 발명하는데, 이는 주석으로 만든 얇은 박인 틴포일(tin foil)을 입힌 원통(진동판)을 돌리면서 나팔관으로 어쿠스틱(acoustic) 음향을 집음하면 미세한 진동에 의해 바늘이 움직이면서 진동판에 소릿골(groove)으로 기록된다. 반대로 재생의 원리는 바늘이 홈들을 지나면서 발생하는 진동을 나팔관이 증폭시켜서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내게 된다. 다만 틴포일은 날카로운 바늘에 의해 한 번의 재생으로도 대부분의 녹음내용이 마모되었기 때문에, 일회성 매체에 가까웠다.

 

포노그래프는 「목소리」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포노(phone)와 「글씨를 쓰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그래포(grapho)를 합쳐서 지었다고 한다. 1885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연구소에서 에디슨의 원통형 축음기를 개량하여 주석 대신 오조케라이트(ozokerite)라는 왁스를 바른 원통을 사용한 그라포폰(Graphophone)을 개발했다. 왁스 원통이 주석 원통에 비해 내구성이 조금 더 강하여 여러 번 재생이 가능했지만, 한계는 있었다.

 

1888년 에디슨이 축음기와 왁스 원통을 개선하면서 상업적인 음반이 탄생하게 된다. 초기의 왁스 원통은 단단한 메탈릭 왁스(metallic wax)와 양초의 재료인 파라핀(paraffin)을 혼합하여 사용했지만, 이후 더 단단하면서도 저렴한 기계윤활제 알루미늄비누(aluminum soap)로 원통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붉은 색의 원통이 점차 갈색을 띄게 되었는데, 이를 브라운왁스원통(brown wax cylinder)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에디슨사는 1889년 5월부터 브라운왁스원통을 이용해 관악기를 사용하는 취주악 밴드 등을 녹음해 판매하기 시작한다.

에디슨사의 판매용 브라운 왁스 원통
에디슨사의 판매용 브라운 왁스 원통

1887년 독일 출신의 미국인 에밀 베를리너(Berliner)가 아연원판에 밀랍(beeswax)를 코팅하여 소릿골을 만든 그라모폰(Gramophone)을 개발하는데, 최초의 원반(disk)형 축음기였다. 원반형은 원통형보다 사용과 보관이 편리했을 뿐 아니라, 대량생산도 가능했다. 하지만 초기 그라모폰은 손잡이를 계속 돌려 재생하는 수동구동형이라는 한계로 인해 시장성이 부족했다. 이 때 태엽구동형 모터를 제공하는 엘드리지 존슨(Eldridge Johnson)을 만나게 되면서, 78rpm 정속으로 회전하는 표준시간 음반(SP, Standard-Playing record)이 구상하게 된다. 1894년 베를리너는 미국 그라모폰을 설립하고, 이후 1897년 영국 그라모폰과 1898년 도이치 그라모폰을 설립했다.

 

초기 레이블들의 각축장, 영국

 

앞서 그라모폰을 개발한 베를리너는 동업자와의 법정공방 끝에 1900년에 미국에서 그라모폰을 판매할 권리를 잃게 되는데, 이때 존슨은 베를리너의 원반레코드 특허와 자신의 기술특허를 사용하여 레코드 장비업체 컨설리데이트토킹머신(Consolidated Talking Machine)를 설립하는데, 1901년 자사제품의 우수성을 강조하여 빅터토킹머신(VTM, Victor Talking Machine)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당시 Victor 레코드 플레이어를 판매하면서 큰 인기를 구가하였는데, 「His Master's Voice」상표를 사용하여 레코드와 플레이어를 광고했다.

 

1887년 에드워드 이스턴(Easton)이 그라모폰 독립판매사를 설립하게 되는데, 베를리너와의 지분관계가 없었다고 한다. 이 회사는 1894년 컬럼비아포노그래프(Columbia Phonograph)로 사명을 변경하면서 컬럼비아레코드(Columbia Records)라는 브랜드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901~1902년 기존의 그라모폰 판매에서 레코드 제작·배급까지로 업역을 확장하는 경영전략을 수립하는데 , 이 때 브랜드인 컬럼비아레코드를 사명으로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초반부터 시작된 레이블의 역사는 주로 영국에서 형성되었는데, 이는 주요 음악가와 연주단체들이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 그라모폰을 비롯하여 조노폰(Zonophone), 파테(Pathé), 에디슨벨(Edison-Bell) 등의 레코드사들이 영국에서 경쟁적으로 영업하면서, 음질기술을 발전되고 레코드산업의 매출과 이익은 급성장하게 된다. 1922년 컬럼비아 영국지사(Columbia Graphophone)가 설립되었고, 미국 본사와는 독립적으로 운영되었다. 1931년 영국 컬럼비아과 영국 그라모폰(The Gramophone)이 합병하여 일렉트로닉 뮤지컬 인더스트리(EMI, Electric and Musical Industries)를 만들어졌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레이블, 니퍼

 

1899년 영 화가 프란시스 바로(Francis Barraud)가 에디슨벨 런던 지사로 강아지가 그려진 그림을 들고 왔는데, 그 그림에는 축음기에서 나오는 주인의 목소리를 갸우뚱하며 듣는 강아지 니퍼(Nipper)의 모습이었다. 니퍼는 원래 형 마크 바로(Mark Barraud)가 기르던 강아지였는데, 니퍼는 영국 속어로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꼬마를 의미한다. 1887년 마크가 죽은 후, 동생 프란시스는 니퍼를 데려와 키우게 된다. 프란시스는 당시 엄청난 화재였던 미국 에디슨벨의 원통형 축음기(cylinder phonograph)를 틀어놓고 그림작업을 하곤 했다. 프란시스는 니퍼가 그의 축음기에 집중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되고, 전 주인 마크의 목소리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것 아닐까하는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1895년 니퍼가 죽은 후, 1898~1899년 프란시스는 기억 속에 계속 맴도는 니퍼의 모습을 유화에 담아냈다. 그림의 최초 제목은 '포노그라프를 바라보며 듣고 있는 강아지'(Dog looking at and listening to a Phonograph)였으나, 얼마 후 그의 영감을 바탕으로 한 '그의 주인의 목소리'(His Master's Voice)로 바꿨다. 

 

이후 프란시스는 그림 속의 축음기를 만든 에디슨벨 런던 지사를 찾아가 회사 홍보용으로 구매의향을 물었으나, 홍보담당자는 거절했다. 프란시스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어둡게 표현한 나팔관을 금색으로 밝게 변경하기로 결심하고, 금색 나팔관을 빌리기 위해 영국 그라모폰을 찾아간다. 마침 현장에 있던 영국 그라모폰 사장 오웬(owen)은 그림의 광고가치를 단번에 알아보고, 프란시스에게 그림 구매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여기서 당연한 조건이 달리는데, 그림 속의 에디슨벨의 원통형 축음기를 그라모폰의 원반형 축음기으로 변경시키는 것이다. 이후 덧칠을 통해 그림의 축음기를 수정한 프란시스는 영국 그라모폰으로부터 거액의 그림값과 저작권료를 받게 된다. 영국 그라모폰은 프랑시스의 그림을 「His Master's Voice(HMV)」라는 이름으로 상표화하였고, 이 상표는 회사의 레코드 플레이어와 레코드에 사용되었다. 현재 런던 EMI 본사에 걸려 있는 그림 원본을 비스듬히 보면 덧칠된 부분 아래에 원통형 축음기의 흔적이 보인다고 한다. 예술가의 신념·강박 때문인지 몰라도, 프란시스는 이후에도 복사본을 그릴 때 굳이 원통형 축음기를 그린 다음 원반형 축음기를 덧칠하는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원통형 축음기를 배경으로 한 프란시스의 최초 HMV와 영국 그라모폰의 엔젤 레이블
원통형 축음기를 배경으로 한 프란시스의 최초 HMV(좌, 출처:세계일보), 영국 그라모폰의 엔젤 레이블(우)

1900년 5월 영국 그라모폰을 방문한 베를리너는 HMV을 보고 감동하여, HMV에 대한 판권을 영국 그라모폰으로부터 사들인다. 1900~1901년에 걸쳐 베를리너는 HMV을 상표로 등록하면서, VTM과 캐나다 그라모폰의 레코드 레이블에 HMV가 등장하게 된다. 마침 축음기 시장에서 원반형이 원통형을 압도하던 시기라서, 이때 음반(disk)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음반의 대중화로 인해 HMV는 점점 더 유명세를 떨치면서, 레코드레이블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된다. 이렇게 북미에서는 HMV 레이블이 인기를 끌던 와중에도, 정작 영국 그라모폰은 1909년까지 사장 오웬(owen)이 고안한 엔젤레이블을 상표로 사용하였다. 이는 천사가 깃털을 이용해 음반 위에 음구를 새기는 모습이었다. 1909년부터 HMV레이블을 사용한 영국 그라모폰도 크게 성장한다. 미국 VTM은 RCA(Radio Corporation of America), General Electric(GE), 톰슨(Thomson, Technicolor SA로 상호변경)을 거쳐 탈리스만브랜즈(Talisman Brands Group)로 인수되었다. 1986~1988년 동안 GE는 RCA의 다양한 사업부를 분할한 후, RCA브랜드 자체만 프랑스 톰슨으로 넘겼다. 이 때 GE는 HMV의 영구사용권을 베르텔스만뮤직그룹(BGM, Bertelsmann Music Group)에 넘기게 되는데, 2004년 BMG는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Sony Music Entertainment)와 합병하면서 소니BMG뮤직엔터테인먼트가 되었다가, 이후 2008년 소니가 BMG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가 된다. 현재는 소니뮤직에서 HMV의 권리를 보유 중에 있다.

산업발전의 초석을 다진, 경쟁자들 간의 기술 공유

 

20세기 초반 미국의 음악산업 성장의 배경에는 원반레코드 특허전쟁이 있었다. 이 시기 각 레코드사들은 독자적인 원반 레코드 기술을 개발하고 그 특허를 얻으려고 노력하였으나, 기술개발 경쟁 과정에서의 호환성 문제, 법적 분쟁 관련 소모, 산업기술 발전의 제약 등의 많은 문제를 야기하였고, 결국은 레코드 회사들은 서로의 특허를 공유하기로 합의하게 되었습니다. 1901년 VTM과 컬럼비아 레코드는 특허공유 합의에 동참하게 되는데, 이러한 기술공유는 각자의 기술을 개선하고 확장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특허공유 합의는 78rpm 원반 레코드를 표준화하면서, 이후 대부분의 레코드 회사들이 78rpm 속도의 레코드를 생산했다. 이는 레코드 플레이어와 레코드 간의 상호 호환성을 증가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전기녹음과 라디오의 등장, 기술혁신

 

1925년 미국 전기장비회사 웨스턴 일렉트릭(Western Electric)에서 전기녹음시스템을 개발하였는데, 이는 녹음·재생 과정에서 전기적 증폭을 이용하는 원리였다. 이전의 어쿠스틱 녹음방식은 소리를 직접 녹음하였으나, 전기녹음은 마이크를 사용하여 소리를 전기신호로 변환하였고, 이 전기신호는 녹음과 재생 과정에서 증폭되었다. 전기 녹음 기술은 레코드 산업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전기 녹음은 소리의 음질과 범위를 크게 향상시키면서 더욱 실제적인 음향을 녹음할 수 있게 되었고, 라디오 방송과 영화산업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신기술의 등장으로 많은 레코드사에서 독자적인 레코드 기술을 개발하면서 특허 경쟁이 있게 되고, 각기 다른 포멧들은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주었다. 또한 많은 레코드 제품들이 출시되면서 음악시장은 포화상태를 맞게 되고,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들 간의 경쟁보다는 공존 필요했다. 이 부분은 원반 레코드라는 신기술로 인해 1901년 미국 레코드 시장에서 일어났던 특허공유 합의와 유사한 상황이다. 1931년 영국 컬럼비아와 영국 그라모폰의 합병으로 EMI가 탄생했다. 회사명의 첫 단어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당시는 전기녹음이라는 혁신의 시기였다.

 

라디오의 등장은 여러 혁신으로 인해 기존 레코드사와의 큰 갈등을 겪고 있었다. 라디오는 어떤 형태의 음악이든 광범위하게 송출할 수 있다는 점과 수신기만 있으면 무료 청취가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마찰이 없는 전파 전송으로 인해 더 나은 음질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소비자에게는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레코드사들은 곧 라디오와 공존을 모색하였고, 라디오광고를 적극 활용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도 중고등학교 시기였던 1990년대 초중반에 라디오의 광고를 통해 새로운 문화상품들(음반·책·공연 등)을 접하곤 했었다. 특히 지방출신으로서 DJ들이 라디오방송국 주소(사서함)를 소개하는 멘트에서 항상 들리는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대한 환상을 크게 가지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대학을 서울로 가게 되면 여의도를 꼭 한번 가보겠다는 다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암튼 이 시기에 레코드산업과 라디오방송은 통합되어 갔다. 1932년 라디오 생산업체이자 NBC를 소유한 RCA가 VTM을 인수하면서 RCA-Victor로 합병되었다. 1938년 컬럼비아방송(CBS, Columbia Broadcasting System)은 American Record Corporation을 인수하면서 컬럼비아레코드(Columbia Records) 브랜드를 소유하게 된 이후, CBS는 컬럼비아레코드를 자체 음반 레이블로 발전시켰다. American Record Corporation는 1934년 컬럼비아 포노그라프를 인수했었다.

 

메모리의 혁신, LP의 등장

 

1948년에 미국 Columbia Records에서 최초로 LP음반(Long Playing micro-groove record)을 개발하였는데, 기존 SP의 78rpm 표준과 달리 33 1/3rpm으로 녹음되었다. LP음반는 한면당 저장 가능한 음악의 용량을 약 20분 수준으로 크게 늘리면서, 음악산업에 큰 변화를 가져 왔다. 이전에는 한 음반에 3~4분의 음악만 저장이 가능하여, 가수와 밴드들은 여러 레코드에 나눠서 발매할 수 밖에 없었다. 40분 이상의 음악을 단일음반에 담는다는 것의 의미는, 특히 긴 플레이타임을 요구하는 재즈와 클래식에서 중요했다. LP음반이 여러 음악을 담으면서 앨범(album)이라는 개념도 생겼다. LP음반은 1980년대에 CD(Compact Disc)가 등장하기 전까지 음악 미디어의 주류였다. 사실 LP음반과 CD 사이에 1960년대에 등장한 카세트테이프(CT, Cassette Tape)가 있는데, 이는 LP가 가지고 있는 크키가 크고 파손이 쉬운 단점을 보완하였다. 작고 휴대하기 쉬운 CT는 곧바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고, 1980년대 초반까지 음악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자동차와 휴대장치(워크맨 등)에서의 사용이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CT는 음질 면에서 LP에 미치지 못하였고, 이 한계가 CD가 등장하면서 해결된 것이다.

 

LP음반에는 최초의 하이피델리티 미디어라는 평가가 따라 붙는데, 하이피델리티(Hi-Fi, High Fidelity) 는 오디오 재생시스템이 원래의 음향신호를 가능한 한 정확하게 재생하도록 설계되었음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이는 노이즈·왜곡이 최소화된 상태에서 넓은 주파수 범위를 재생할 수 있는 오디오 장비를 설명한다. 하이피델리티는 1950~1960년대에 특히 강조되었는데, 이는 스테레오 녹음 및 재생이 상용화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오디오 장비 제조업체들은 고객들이 더 좋은 음질을 원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제품의 고품질 사운드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트렌드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많은 오디오파일들이 고급 오디오 장비를 찾고 있다.

 

음질의 혁신, 스테레오 기술

 

모노포닉 음향(monophonic sound, 이하 모노)은 오디오 녹음과 재생에서 한 개의 오디오 채널만 사용하는 방식이다. 모노 방식은 초기 음향 기록 방식의 주류였고, 초기 LP음반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모노 방식은 모든 스피커에서 동일한 오디오 신호가 재생되며, 소리의 방향성을 표현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모노 음향은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는데, 이유는 일부 오래된 레코드나 라디오 방송은 원래 모노로 녹음되었기 때문에, 이들은 원래의 음질을 유지하기 위해 모노로 재생하는 것이 가장 좋을 수 있다. 스테레오포닉 음향(stereophonic sound, 이하 스테레오)는 모노 방식과 달리, 오디오 녹음과 재생에서 두 개 이상의 독립적인 오디오 채널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스테레오 방식의 일반적인 두 채널은 왼쪽 스피커와 오른쪽 스피커로, 이는 청취자에게 입체적인 공간감을 제공하며, 실제로 사람들이 두 귀로 소리를 듣는 방식을 모방합니다. 스테레오 사운드의 도입은 음악,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 등 다양한 미디어에서 소리의 풍부함과 깊이를 향상시킴으로써 오디오 체험을 혁신적으로 개선했다.

 

1950~1960년대에는 스테레오 방식이 상용화되면서 매우 많은 소형 레이블들이 활약하게 되지만, 대부분이 메이저 레이블(EMI, 도이치 그라모폰, RCA빅터, CBS 등)에 흡수된다. 1970년대 들어 네덜란드 가전메이커 필립스가 필립스 레코드(Philips Records)를 운영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미 필립스는 1950년대에 개발한 카세트 테이프를 통해 녹음기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1972년 필립스의 녹음 부문과 독일 지멘스(Siemens)의 전자 부문이 합병하면서 폴리그램(PolyGram)이 되었고, 이후 폴리그램은 데카, 도이치 그라모폰 등을 차례로 흡수하면서 성장한다. 폴리그램은 1998년에는 유니버설 뮤직(Universal Music Group)에 인수된다. EMI는 메이저 독립 레이블로서 자리를 계속지켰고, CBS는 일본의 소니뮤직과 합작회사를 만들어 CBS소니를 출범시켰다가, 이후 소니가 완전히 흡수하면서 소니뮤직이 되었다.

 

자본력을 갖춘 한국의 기획사들이 꿈꾸는, 멀티레이블

 

최근 한국에서도 레이블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주로 기획사의 특화된 자회사를 의미한다. 상당한 자본력을 갖춘 대형기획사들은 자회사 형태로 여러 서브레이블을 두는 멀티레이블을 경영전략을 취하고 있다. 다양한 레이블 자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통한 국내수요와 해외시장으로의 확대을 가능하게 하며, 레이블 간의 시너지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독과점 및 자본종속 이슈와 레이블 간의 양극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대형기획사의 과감한 초기 투자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신인발굴 시스템(Artist&Repertoire, A&R)과 정교한 제작(기획 및 마케팅) 역량을 통해 만들어진 아이돌들은 소비자의 눈과 마음을 파고 들며 큰 인기를 구가할 가능성이 높다. 아이돌이 소속된 레이블들은 위험을 무릎쓰고 큰 자본을 투입한 만큼, 투자금 회수를 위한 냉철한 경영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하고 있다.

 

하지만 수익률로 평가되는 사업구조와 경영환경에서 마이너 장르를 목표로 설립한 레이블들이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멀티레이블에 속한 레이블들의 컨텐츠가 획일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유이다. 한 가지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레이블의 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돌들의 정산시기이다. 과거에는 수년이 지나도 돈 한푼 정산 받지 못하고 은퇴하는 아이돌들이 많았다고 알고 있는데, 이제는 레이블의 대표가 직접 언론에 나와서 빠른 정산시기를 은연 언급하는 세상이다. 이는 오랜 시간 많은 연예인들의 희생으로 정산시스템이 투명화된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기획사들의 자본력이 높아져서 개선된 부분이 많다. 기획사들이 초기비용을 투자로 인식하게 된 것인데, 아직도 재무적으로 열악한 군소 기획사들은 비용의 상당부분을 소속 연예인에게 전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레이블은 초기 녹음시대의 원반형 축음기의 상표로 시작하여, 레코드를 제작하는 음반사를 대표하는 아날로그 감성의 상징이었다. 오늘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음악산업에서 물리적 형태를 지난 음반의 개념을 음원이 대체하고 있다. 음원은 물리적 형태를 띄지 않는 컨텐츠로, 과거 음반사를 상징했던 레이블이라는 용어가 최근의 음원 컨텐츠 제작사를 일컫는 것은 일응 타당해 보인다. 기왕에 자본력과 제작능력을 갖춘 국내 대형기획사와 레이블들이 앞으로 펼칠 글로벌 메이저 경쟁자들과의 멋진 경합을 기대해본다.

 

[Music] 레코딩의 경이

https://www.youtube.com/watch?v=Q5VFAF-_nVA

The Wonder of Recording #레코딩의 경이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