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 전후의 조선(숙종대)는 사회적 혼란이 극심했는데, 정치변화(환국)과 기근·전염병이 잦았다. 사회적 혼란의 틈을 타고 피지배층의 계급적 불만이 폭력적인 형태로 폭발했는데, 이 때 등장한 세력이 살주계와 검계가 있다. 살주계(殺主契, 주인을 죽이는 무리)는 신분제도와 양반의 횡포에 불만을 품은 노비 중심의 비밀결사로, 극단적인 행동강령(주인 살해, 부녀자 겁탈, 양반재산 강탈)은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실제 숭례문이나 언관(언론 담당 관원)의 집 앞에 살해협박을 담은 방을 붙여 양반사회에 공포를 불어 넣었다고 한다. 조정에서 살주계가 처음으로 드러난 계기는 목내선 가문의 노비들이었다. 목내선(예조·호조 판서 역임)의 집은 청파동에 위치했었는데, 집안 노비들이 살주계로 활동하다가 포도청에 적발된 것이었다. 상전을 살해하거나 위해를 가하려 모의했으며, 체포 당시 양반 살해강령이 적힌 책자와 칼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검계(劍契, 칼을 찬 무리)는 조선판 조직폭력배로, 다양한 계층(몰락양반·서얼·중인·천민·부랑자 등)이 섞여 있었다. 검계의 징표로 칼자국·삭발을 내었으며,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나막신을 신고 다니며 칼을 숨겨 다녔다. 주로 밤에 행동하며 양반·부유층을 습격했는데, 유흥가나 도박장을 장악하면서 약탈과 청부살인 등을 저질렀다. 이전 글 <사랑이 금지된, 궁궐>에서는 19세기 화류계 큰손이 별감·반인·검계였다고 언급했다.

살주계·검계는 밤마다 남산·삼각산에 모여 칼을 차고 진법을 연습했으며, 한성 도심에 출몰해 사대부 가옥을 습격하여 행동강령에 따라 살해·겁탈·강탈을 감행했다. 살주계·검계의 폐해가 커지자, 영조는 장붕익(포도대장)을 앞세워 범죄조직을 소탕했다. 장붕익은 한성 전역에서 조직원을 잡아들였고, 체포된 주동자들을 엄히 다스려 조직을 일시적으로 소탕했다. 1733년(영조 9) 장붕익의 혹독한 소탕 작전에 원한을 품은 검계 세력이 그를 암살하기 위해 자객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당시 환갑의 노장이었던 장붕익은 밤중에 방에 침입한 자객을 발견하고 직접 칼을 휘둘러 격투 끝에 물리쳤다고 한다. 이후 표철주(검계 수장)은 도성 밖으로 도주했다.
드라마 <추노>에 등장하는 노비당은 살주계를 모티브로 했으며, 천지호(성동일 분) 조직은 검계에 가깝다. 하지만 드라마의 배경이 병자호란 직후의 인조대인 점에서 실제 역사보다 100년 이상 일찍 살주계·검계가 등장했는데, 판타지 사극이라서 소설적 창작을 덧붙인 것이다. 하지만 2차례 왜란·호란 이후 신분제가 크게 흔들린 점은 사실이며, 17세기 후반에 등장한 살주계·검계는 조선이 망하는 그 날까지 끈질기게 이어져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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