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친형 같았던 외사촌형이 간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30대 중반이었던 내가 겪었던 상실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고, 20대에 함께 술 마시며 어울렸던 추억들을 후회한 적도 많았다. 외가집은 유전적으로 간염에 취약했는데, 30대 후반에 명을 달리한 외사촌형도 B형 간염 보균자였던 것이다. B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률은 백신이 상용화되기 전 8~10% 보다 줄었으나, 아직 2.5~3% 대로 유지되고 있다. 2023년 3월 베토벤(1770~1827)의 사인이 죽은 지 약 200년 만에 머리카락 게놈(genom) 분석을 통해 밝혀졌다고 한다. 간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예방접종을 맞고도 어떤 유형의 간염 예방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내가 그랬다.
간으로 쓰러진, 베토벤
베토벤의 사인에 대해서는 그간 납중독 등 여러 가설들이 제기되어 왔지만, B형 간염 감염과 유전적 간 질환, 지속적인 음주로 인한 간경화로 숨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영국과 독일의 공동 연구자들은 베토벤의 것으로 알려진 8개의 머리카락 타래를 분석해 이 중 5개는 베토벤의 머리카락이 맞다고 확신했고, 이후 모발을 분석한 결과 베토벤이 사망 최소 몇 달 전에 B형 간염에 감염된 사실을 확인했으며, 여기에 널리 알려져 있던 베토벤의 지속적인 음주이력까지 더해 간경화로 숨진 것으로 간주된다고 밝혔다. 과거 베토벤의 절친은 베토벤이 사망 전 1년간 매일 1리터의 와인을 마셨다고 진술했고, 알코올 의존과 간질환이 베토벤의 가족력이라고 기록한 문서도 있다.

술에 관대했던, 베토벤의 시대
베토벤이 술을 많이 마셨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는 그 시대적 배경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18~19세기 유럽에서는 음주문화가 중요한 사회생활의 일부였기에, 다양한 술(와인·맥주·브랜디 등)을 음식과 함께 즐기는 것이 일상이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술과 연관해서는 건강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음악가들은 출장공연(교회·궁전·귀족저택)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었는데, 이러한 공간에 열리는 연회·행사에서는 술이 항상 마련되어 있었다고 한다. 자연스레 음악가들도 음주할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베토벤은 여러 문제(난청·가난·사랑·가족 등)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겪었는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을 찾았을 수 있다. 이전 글 <세상을 영화로 바라보는, 객관화>에서는 객관적 관찰자의 시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면서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언급했지만, 술 만큼 빠른 속도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물질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의학적 지식은 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낙후되어, 술이 특정 치료제로 오용됨은 물론 유해성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않았다.
바이러스에 의한, 간염
간염은 간의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으로, 주로 바이러스 외 알코올·약물·자가면역질환 등이 원인이다. 바이러스성 간염은 크게 다음 5가지가 있고, 각각의 치명 정도는 감염된 바이러스의 종류와 환자의 건강상태에 따라 다르다.
유형 1) A형 간염(HAV, Hepatitis A Virus)
주로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입으로 섭취함으로써 전파되는 비교적 경미한 간염 형태로, 대부분의 경우 심각한 합병증 없이 자연치유된다. 대게는 급성간염으로 주된 증상으로 구토·설사·복통·피로·발열 등이 나타난다. 2009년 박명수가 HAV에 감염되어 입원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유형 2) B형 간염(HBV)
감염성이 높은 HBV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어 있는데, 주로 체액(정액·질분비물·혈액)을 통해 전파되며, 모친으로부터 수직감염되기도 한다. 증상은 HAV와 유사하지만, 만성간염은 심각한 합병증(만성간질환·간경변증·간암 등)을 유발할 수 있다. HBV는 백신이 있어 예방이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감염자는 평생 약을 먹으며 조절해야 한다. 물론 일부는 완치도 가능하다.
유형 3) C형 간염(HCV)
해외에서는 국내와 달리 HCV 감염이 보도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보통 혈액으로 전염되는 HCV의 감염 특성상 주사바늘을 소독하지 않고 공유하면서 전염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20년 질병관리청·대한간학회가 발표한 일반인의 HCV 항체 양성률은 0.75%에 불과했지만, 약물남용자의 HCV 항체 양성률 48.4%로 달했다. 이는 약물남용자가 유독 HCV 유병률이 높으며, 일반인보다 HCV 감염 가능성이 약 65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HCV는 대부분 만성간염을 유발하며 지속적인 간손상을 일으킨다. HIV(에이즈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돌연변이가 빠르게 일어나 백신개발이 어려워, 바이러스 보유자의 발견과 전파경로를 차단이 중요하다. HBV에 비해 치료가 쉬우며, 완치율이 높은 편이다. 파멜라 앤더슨은 약물남용 전력이 있는 토미 리와 결혼한 뒤, 문신을 새기면서 바늘을 함께 사용했다가 HCV에 감염되었다고 한다. 더스틴 호프만과 로니 우드(롤링스톤즈 기타리스트)도 HCV 감염으로 인한 합병증에 걸렸으나,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아 회복했다고 한다.
간염에 감염된 사람들은 초기에 증상이 없거나 미미한 증상을 겪지만, HBV·HCV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어서 침묵의 살인자(silent killer)로 불린다. 간염은 정기검사를 통한 조기발견과 치료가 중요하다. 급성간염은 대부분 자연 치유되지만, 만성간염은 간경변증·간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HAV·HBV는 백신접종을 통해 예방이 가능하여, 세계보건기구(WHO)는 예방접종을 모든 국가에서 실시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간염 바이러스는 주로 체액·혈액을 통해 전염되므로, 감염 예방을 위해 청결한 생활습관을 유지하고, 개인용품(바늘·칫솔 등)을 공유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유형 4) D형 간염(HDV), E형 간염(HEV)
HDV는 HBV와 동시에 감염되거나 이미 HBV에 감염된 환자에게 발생하며, 간질환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HEV는 HAV와 같이 주로 오염된 물이나 음식을 구강으로 섭취함으로써 전파되며, 일반적으로 경미한 간염을 일으킨다. 현재 HEV 감염에 대한 특별한 치료법은 없다. HEV 감염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한 치료가 필요 없이 몇 주 또는 몇 달 내에 자연적으로 회복된다. HEV는 HAV와 공통점이 많으나, HEV는 임산부가 특히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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