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한 어린시절에는 2층 단독주택에서 거주하다가, 국민학교 6학년이 되던 1990년 개학을 앞두고 신시가지에 위치한 아파트로 이사를 갔었다. 당시 내가 살던 도시에서는 몇 년 동안 아파트의 공급이 없는 상태여서, 입주 당시 상당히 인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아파트는 50평대와 34평형이 있었는데, 우리집은 34평형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계약면적, 분양면적 또는 전용면적의 개념 없이 그저 우리집은 34평이라고만 생각했었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꼭 34평에 많이 사는지에 대한 의문은 없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전용면적을 포함한 법정면적들에 대해서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
국민주택의 탄생
1960~1970년 대 박정희 정권에서는 경제가 계속 성장하면서 양질의 주택을 공급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전 글 <한국인을 호화유람선에서 살게한, 르 코르뷔지에>에서는 1962년 마포아파트를 시작으로 한국에 아파트라는 기능성 높은 주거유형가 등장했다고 언급했다. 제한된 땅 위에 높은 아파트를 지어서 공급하기 위해 자금이 필요했는데, 이를 위해 1973년 1월 한국주택은행에 국민주택자금계정(훗날 국민주택기금)이 설치되었다. 국민주택은 국민주택기금을 지원 받아서 건물을 짓거나 개량되는 주거형태를 말한다.
1973년 주택건설촉진법 시행령 제정 당시, 경제규모를 감안한 최소한의 주택규모를 25.7평이라고 판단했는데, 이는 당시 학계·전문가들이 1인당 적정주거면적을 5평으로 규정한 것이다. 0.7평이라는 꼬리가 붙은 이유는 25평을 법정 면적기준인 제곱미터(㎡)로 환산했을 때 82.65㎡가 되어 법조문 삽입이 곤란하다고 판단하여, 편의를 위해 기준면적을 85㎡을 정하고 평으로 환산한 25.7평을 국민주택 규모로 규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한편으로는 박정희의 신당동 주택이 85㎡였는데, 살기에 적당한 면적이었다는 대통령의 의견이 반영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국민주택 규모는 법적으로 85㎡ 이하로 정해지고, 수도권 외 읍면지역은 100㎡ 이하이다. 1973년부터 현재까지 이 면적 기준을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는데, 최근에 와서 국민주택 규모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의견 1) 국민주택 규모 축소
2012년 서울시는 서민주거 안정화 대책을 통해 국민주택규모를 65㎡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1~2인 가구의 증가로 소형주택을 찾는 수요가 늘었다는 이유였다. 가구당 인구수는 1970년대 5명대에서 2020년 기준 2명대 초반으로 줄었다. 또 한정된 토지 위에 더 작은 주택을 더 많이 공급할 수 있어서 집값 하락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당시 국토해양부는 재건축을 통한 주택공급이 위축될 것을 우려하면서 이에 반대하였다.
의견 2) 국민주택 규모 확대
시대 변화를 반영하여 국민주택 규모를 더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다. 국민주택의 기준은 최저 주거기준이 아니고 다양한 정책 혜택의 기준이 된다는 부분, 잠만 자던 주택에서 일과 삶의 균형의 중시로 다양한 여가활동이 가능해야 한다는 부분, 게다가 이전 글 <업무 및 상업 시설을 향한 우려, 그리고 변화 >에서 언급했듯이 COVID-19로 인한 일하는 방식의 변화로 재택근무까지 가능한 주거환경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넓은 공간을 갈구하는 인간의 숨겨진 욕구 등을 반영하여 더 큰 규모의 주거면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국민주택규모를 일괄적으로 100㎡(현 읍면지역 기준)까지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축소론에 따라 국민주택 규모를 65㎡로 줄이게 되면 정책 혜택의 기준점이 내려감으로써, 65~85㎡ 사이 주택공급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향후 경제성장의 결실로 소득 규모가 더 커져 대형평형의 수요가 늘어날 경우, 소형 위주의 공급으로 인해 주택수급의 균형이 깨질 수도 있다. 소형평형의 공급에 주안점을 둔다고 하면, 국민주택 규모를 축소하기 보다는 65㎡이하에 대한 혜택을 늘리는 것으로 대처할 수 있다.
국민주택 규모를 기준으로 한, 혜택
국토부가 국민주택 규모를 건드리기 어려워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금융, 세제 및 청약 등 다양한 제도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리모델링 증축 범위도 국민주택규모를 기준으로 국민주택규모 이하 40% 증축, 이상 30%만 증축하도록 구분하고 있다.
혜택 1) 금융 및 세제
아파트를 구매하는 경우 취득세를 내게 되는데, 이 때 취득세에 따른 지방교육세 및 농어촌특별세를 내게 된다. 국민주택규모 이하의 주택은 농어촌특별세 감면과 연말 소득공제 등의 세제혜택이 있다. 또한 근로자·서민주택구입자금 대출과 전세자금 대출 등의 금융지원과 건설사와 주택수요자들의 국민주택기금의 활용과도 밀접히 연계되어 있다.
혜택 2) 청약
국민 상당수가 가입된 청약통장은 이미 85㎡를 기반으로 설계되어 있고, 공공주택의 청약가능 기준도 85㎡를 기준으로 운용되고 있다. 대부분의 부동산 정책은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을 대상으로 한다. 가점제는 무주택 서민들에게 유리한 제도인 반면, 추첨제는 무작위로 당첨자를 선정하기 때문에 주택·자산 유무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무주택 서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은 가점제 비율을 최대 40%까지 정하도록 했다. 그래서 보통 건설사들은 당첨자 중 40%를 가점제로 뽑고, 전용면적 85㎡를 초과하는 아파트는 100% 추첨으로 뽑는다.
설계의 마법, 서비스면적
현재 주거시설에서 방(room)의 진화가 계속되고 있다. COVID-19의 영향으로 외부 활동이 제한되면서 집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수요가 생겨났고, 이는 룸인룸(방 안의 방), 룸앤룸(방과 방) 등의 시대를 가속화시키면서, 방의 용도가 분화되고 특화되는 추세를 이끌고 있다. 부대용도(창고·옷방 등)으로 쓸 수 있는 알파룸이나 베타룸은 이미 보편화되었고,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는 다용도 목적의 오메가룸까지 도입되고 있다. 이러한 방의 진화의 배경에는 역시 진화되고 있는 서비스면적의 확보가 자리한다.
2000년대 들어 서비스면적을 클수록 분양이 잘 되기 시작하면서, 서비스면적을 넓히기 위해 베이(bay) 수를 늘릴 설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베이(bay)는 전면 발코니와 접한 방과 거실의 숫자이다. 법적으로 발코니 너비가 1.5m로 제한되어, 발코니 넓이를 늘리기 위해 베이 수를 늘릴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주거평면을 정방형 보다는 직사각형으로 변형시켰고, 4-Bay가 3-Bay 보다 더 많은(3~4평) 서비스면적을 제공했다. 당연히 조망·채광·통풍 또한 좋아졌다. 주거효율을 높이면서 우리 생활에 자리 잡은 서비스면적의 형태는 다음과 같다.
형태 1) 자투리 공간의 진화, 알파룸
발코니 확장으로 평면이 길어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사이사이에 자투리 공간이 많이 생긴다. 가령 거실과 방 사이, 방과 방 사이, 거실과 주방 사이 등이 대표적이다. 2010년대 들어 아파트 평면설계에서 자투리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알파룸 도입되었는데, 알파룸은 발코니 확장과 달리 추가비용 없이 덤으로 주는 공간이다. 소비자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는데, 주로 식품을 저장하는 주방창고 및 팬트리(수납장), 드레스룸, 서재, 공부방, 와인바, 티테이블 세트 등으로 활용된다.
형태 2) 쾌적함의 극대화, 3면 발코니
3면 발코니는 전·후면 발코니에 더하여 측면까지 발코니 확장이 가능한 형태이다. 3면 발코니로 설계되는 84㎡타입은 매우 인기가 높은 편인데, 이는 동일한 전용면적이라도 보다 넓은 실사용 면적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채광·통풍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서비스면적(발코니)를 최대한 확장하면서 실사용 면적을 극대화할 수 있다. 침실 쪽에 발코니가 추가되면 서재나 드레스룸, 붙박이장 등을 추가 설치 가능하다. 공간이 넓다 보니 같은 남향이라도 개방감이 좋고 이른 아침과 늦은 오후에도 햇빛이 들어와 채광도 우수하다.
개인적으로도 3면 발코니로 설계된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것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입주 당시 부터 동일 평형의 다른 타입들 보다는 집이 넓어 보이긴 했지만, 중개사도 서비스면적이 13~15평 정도는 될 거라는 상투적인 말만 하고 자세한 내용은 말해주지 않았었다. 이제 보니 한 동의 끝 라인에 위치하다 보니, 측면 발코니가 안방 쪽으로 확장된 것이었다. 과학 및 기술의 발전과 건축설계사의 탐구 노력이 주거의 편리성과 쾌적성을 한껏 높여주는 시대이다. 국민주택이라도 서비스면적을 발굴하면 대형평형으로 변하는 마법의 시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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