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현생공간은 어찌 보면 영혼이 휴가 차원에서 머무는 천국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다만 즐겁고 행복한 시간에 한해서이다. 사는 것이 고통이라는 말이 있지만, 인간이 느끼는 고통이 과연 진정한 것일까. 모든 것은 우주의 기운이 시뮬레이션된 것일 수도 있으며, 어떠한 사유에선지 이를 반복하는 것이 윤회라고 생각한다. 윤회의 과정에서 한 영혼에게 주어지는 고통·괴로움은 천차만별일테니, 이 생에서 스스로의 만족스럽지 못한 팔자를 한탄하고 있다면 그저 그러려니 여길 필요도 있다.
인간이 신성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일상적인 방법으로 명상(호흡법)을 들 수 있는데, 인체에 영혼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송과체 내지 뉴런(내 미세소관)일지도 모른다. 흔히 말하는 귀문(鬼門, 귀신이 드나드는 문)이라 표현할 수도 있다. 이전 글 <양자와 외계인이 말하는, 영혼>에서 뉴런의 미세소관에서 양자진동이 발생함과 동시에 뇌파를 발생시킬 수 있으며, 이 뇌파가 붕괴할 때마다 발생하는 양자사건으로 인간의 의식을 설명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었다.
멜라토닌 공장, 송과체
송과체(송과선, pineal gland)는 뇌 중앙에 위치한 작은 내분비기관으로, 멜라토닌을 생성·분비하여 수면패턴·생체리듬을 조절한다. 영어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평평하게 눌려진 솔방물의 모양이며, 녹두콩(길이 5~8mm, 폭 3~5mm) 크기로 매우 작은 편이다. 이전 글 <인체 내 작은 우주, 뇌>에서는 시상의 뒷부위에 시상상부가 있으며, 시상상부에는 고삐핵과 송과체가 있다고 언급했었다. 트립토판에서 유래된 세로토닌은 송과체에서 멜라토닌으로 전환되며, 송과체는 멜라토닌을 직접 혈류로 분비한다. 멜라토닌은 기억 형성, 면역력 강화, 그리고 암 예방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생식호르몬의 분비·조절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전 글 <빛을 모으지만 과하면 바래지는, 눈>에서 블루라이트가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하여 수면주기에 영향을 주며, 특히 저녁시간대에 블루라이트 노출이 높으면 수면 질 저하와 수면패턴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언급했었다. 멜라토닌은 어두운 환경에서 주로 생산되며, 밝은 공간에서는 빛이 있을 때는 억제된다. 송과체는 빛의 변화정보에 따라 다음의 광내분비 시스템이 작용하면서 멜라토닌 생산을 조절합니다.
망막
→ 시상하부
→ 교감신경
→ 송과체
영적으로 여겨졌던, 송과체
많은 종교·명상 분야에서 송과체를 초능력(제3의 눈)을 여는 신비로운 물체로 여기는 경우도 있는데, 투시력·예지력과 연관짓게 된다. 고대 이집트의 여러 신전 조각에서 솔방물 모양이 표현되어 있다. 바티칸 박물관 내의 피냐(Pigna, 솔방울) 정원에는 4미터 가량의 청동으로 만든 솔방울·공작 조각상이 있는데, 로마인들은 솔방울을 부활·영생·풍요·보호의 상징으로 여겼다. 1608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는데, 원래는 판테온 신전 인근 분수의 일부였다고 한다.
동양사상(불교·힌두교 등)에서도 송과체의 영적 통찰을 상징하는 의미로, 이마에 점(빈디)이나 눈을 그리곤 했다. 빈디(Bindi)는 이마 정중앙(미간)에 점을 찍거나 보석 등을 붙이는 인도·힌두교 문화로, 산스크리트어 빈두(Bindu, बिंदु), 물방울)에서 유래된 말이다. 빈디가 찍히는 자리는 아즈나 샤크라(Ajna Chakra, 6번째 차크라)라 위치한 곳으로, 인간의 본성을 지배하는 제3의눈이 존재하는 지점이다. 빈디는 이 지점의 기(氣)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또한 붉은 빈디는 기혼여성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산스크리트어 샤크라(Chakra, 원형·바퀴)는 고대 인도·불교의 수행에서 신체 내 에너지 중심점들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회전하는 원반·바퀴로 여겨졌다. 다음 7개의 사크라가 척추를 따라 배치되어, 나디(nadi, 에너지 통로)와 연결되어 에너지의 흐름·균형을 조절한다고 믿었다.
물라다라(Muladhara, 꼬리뼈) : 빨간색, 생존·안정·안전
스와디스탄(Svadhisthana, 하복부) : 주황색, 감정·창의성·성
마니푸라(Manipura, 명치·배꼽) : 노란색, 의지력·자기통제
아나하타(Anahata, 심장) : 초록색, 사랑·연민·조화
비슈다(Vishuddha, 목구멍) : 파란색, 소통·표현·진실성
아즈나(Ajna, 이마) : 남색·자주색, 직관·명확성·통찰
사하스라라(Sahasrara, 정수리) : 흰색·보라, 영성·깨달음·의식
송과체를 철학적 기반으로 한, 데카르트
근대 서양철학에서 송과체를 신비롭게 바라보는 관점은 데카르트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17세기 초반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는 송과체를 정신·육체가 상호작용하는 유일한 뇌 부위로 여기면서, 영혼의 좌석(seat of the soul)이라고 지칭했다. 이러한 관점은 송과체를 뇌의 유일한 단일구조이며, 감각기관(눈·귀)의 중간에 위치하여 감각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송과체가 영혼과 신체이 연결되는 접점이라고 여겼으며, 신경 내에 흐르는 동물령(animal spirits)이 송과체를 통해 감각·사고·운동을 조절한다고 생각했다. 인풋(감각)이 송과체로 전달되고, 송과체에서 영혼의 의지와 함께 아웃풋(사고·운동)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이 송과체에 기반했다는 점이 놀라운데, 심신이원론의 정신·신체가 다음과 같이 독립적 실체라는 철학적 견해이다.
정신(영혼) : 비물질적 세계, 사고하는(res cogitans) 실체
신체(물질) : 물질적 세계, 연장된(res extensa) 실체
1619년 11월 군 복무 중이던 데카르트는 3번의 꿈에서 모든 지식을 개혁하라는 메시지를 받았으며, 이후 방법적 회의(methodical doubt)를 통해 확실한 지식을 찾으려 한다. 기존의 모든 지식·믿음을 의심하면서 다음의 명제와 같은 확고한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을 추구했는데, 바로 자아의 본질이 사고하는 실체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데카르트는 서로 다른 2개의 실체가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오직 인간이라는 존재라고 주장하면서, 더 구체적인 지점을 송과체로 본 것이다. 데카르트는 정신의 존재는 분할할 수도 없으며, 의심할 수도 없다고 봤다. 물론 심신 간의 인과적 상호작용을 설명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여러 철학자의 비판을 받기고 했다. 데카르트의 400년 전 주장은 현대적 관점에서 과학적 오류 투성이겠지만, 조선에서 왜란·호란이 치를 때 해부학적 근거에 기반한 철학적 해석을 했다는 점에서 놀랍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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