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훠궈를 처음 먹어 본 것이 2007년 여의도 중경신신로였는데,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직장인이 중국음식의 매운 맛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후 2~3년 동안 혜화동 불이야를 단골집으로 삼아 훠궈를 참 많이 먹었었는데,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가게라서 그런지 술 마시기 좋은 공간이었다. 2010년대에는 하이디라오를 자주 다녔었고, 2020년대 들어서는 수지구청역 근처의 미가를 가족들과 가끔 찾는데, 메뉴(양고기·훠궈) 퀄리티도 좋은데가 중국풍의 인테리어와 적당한 가격대를 갖추고 있다.
2010년 중반부터 갑작스럽게 마라탕이 유행했었던 것 같다. 특히 10대 여학생들이 마라탕을 선호하는데, 이는 미각을 자극하는 이국적인 향신료와 함께 식재료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의 영향이 큰 듯 하다. 본인의 취향껏 즐길 수 있으며, 한 그룻 단위로 중량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중국음식의 매력, 얼얼
마라(麻辣, 얼얼하고 매운)는 화자오의 얼얼한 맛(마)과 고추의 매운맛(라)을 의미한다. 마라탕은 여러 향신료(초피·팔각·정향·회향·쿠민 등)를 사용하여 향을 낸 기름에 고춧가루, 두반장, 화생장(花生酱, 땅콩소스), 마장(麻酱, 깨소스)를 넣고 사골육수를 부어서 만든다. 얼얼하게 매운 맛을 고소한 맛으로 조율하지만, 캡사이신(매운 맛)과 하이드록시 알파 산쇼올(얼얼함)을 가미하기도 한다. 두반장(豆瓣酱)은 콩(대두·잠두)을 섞어서 발효시킨 후 소금과 향신료를 섞어 맛을 완성시킨 장으로, 오늘날의 매운 두반장은 고추가 유입된 청나라 이후에 등장했다고 한다.
훠궈(火锅, 화과, 불위의 냄비)은 북방의 유목민족에서 유래되었는데, 휴대용 솥에 재료를 넣어 끓여 먹는 방식에서 시작되었다. 북송대부터 중국에서는 솥을 사용하여 음식을 데쳐서 먹는 방식이 대중화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송대에 훠궈의 형태가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높다. 북송대 고체연료(석탄 등)의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강한 화력을 요리에 적용할 수 있었고, 이에 일본에서 수입한 무쇠로 웍을 만들기 시작했다.
후오(镬, 확·웍)는 둥근 바닥을 가진 다용도 얇은 팬으로, 금방 달아오르고 빠르게 식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고온에서 순간적으로 볶거나 튀기는 요리법이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송대 이전에는 볶음요리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웍의 등장으로 볶음·튀김·불맛이 생겨났다. 강한 화력에서 웍에 재료를 빠르게 볶을 때, 재료·기름이 순간적으로 강한 화력과 접촉하면서 깊은 불향(훈연)과 감칠맛을 내게 된다. 이를 웍헤이(鑊氣, 웍의 숨결, 불맛)라고 한다. 17세기 중반 청대에는 황실부터 대중까지 훠궈를 즐겼다고 한다.
그릇 단위의 훠궈, 마라탕
1990년대 사천(쓰촨)의 마오차이가 동북(둥베이)에서 마라탕으로 변형된 이후, 중국 전역에 대중화되었다. 마오차이(冒菜, 모채)는 대량으로 끓인 훠궈를 1인분씩 그릇에 덜어 낸 것으로, 끓이면서 먹는 훠궈와는 차이가 있다. 훠궈·마오차이가 맵고 얼얼한 맛에서 큰 차이는 없는데, 이는 산초기름의 영향이다.
중국에서는 산초를 화초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맛의 강도에서 있어서는 비교가 불가하다. 화초(花椒, 화자오)는 중국·티베트·네팔·인도 요리에 널리 쓰이는 향신료로, 스촨페퍼(Sichuan pepper)로도 불리는 사천요리의 핵심재료이다. 화자오는 꼬투리 전체를 말려서 통째로 볶아서 사용하는데, 초피보다 신맛이 덜하면서도 향이 더 진하다. 즉 화자오가 중국 특유의 매우 강력한 마비감은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하이드록시 알파 산쇼올(hydroxy alpha sanshool)은 초피나무속 식물에 포함된 화합물로, 중국음식 특유의 마비감(얼얼하고 저릿함)의 원인성분이다. 산쇼올(sanshool)은 일본어 산쇼(山椒, 초피나무)와 접미사 올(-ol, 알코올류 화합물)을 합친 단어로, 뜨겁다기 보다는 얼얼하게 마비되는 느낌을 준다. 캡사이신(고추)의 매운맛이 뜨겁게 자극되는 통각수용체(TRP 채널)를 자극하는 반면, 하이드록시 알파 산쇼올은 KCNK 계열의 칼륨이온 채널을 활성화시켜 신경에 독특한 감각을 전달한다고 한다.
동양의 향신료, >초피
어릴 적부터 추어탕·장어탕을 먹을 때면 비린내를 잡기 위해 초피가루를 듬뿍 넣어 먹었는데, 얼마 전 서울 마천시장에서 사온 추어탕이 딱 추억의 그 맛이었다. 지금까지도 초피와 관련해서는 다음 2가지가 헷갈린다.
초피(제피) : 초피나무(Zanthoxylum piperitum) 열매
산초 : 산초나무(Zanthoxylum schinifolium) 열매
운향과(Rutaceae)에 속하는 초피나무·산초나무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데, 참고로 감귤류도 운향과에 속한다. 초피나무는 한국·중국과 일본 남부에서 자라며, 잎이 대칭이면서 가장자리가 톱니모양을 띤다. 추위에 강한 산초나무는 한국 전역과 일본 중부내륙에서 자라며, 잎이 비대칭으로 어긋나 있고 가장자리가 매끄럽다. 초피나무 가시는 산초나무보다 길고 얇으며, 잎은 더 두껍다. 경상도 음식에 초피가루가 많이 쓰이는데, 이는 초피의 대표산지가 지리산 일대(산청·함양·남원 등)이기 때문이다. 고추가 조선에 전래되기 전부터 한반도에서는 초피를 매운 향신료로 사용했다.
초피는 강렬한 매운맛·신맛과 특유의 얼얼함을 특징으로 하는데, 특히 생선으로 조리한 국물요리의 비린내를 잡아주면서 감칠맛을 더한다. 산초는 초피의 약한 맛으로, 얼얼함이나 신맛은 거의 없는 편이다. 한국에서는 초피·산초를 혼용하지만, 산초가 자극적인 향을 가졌다면 초피일 가능성이 높다. 경상도 지방에서 즐겨 먹는 음식 중에는 가죽나물이 있는데, 이는 참죽나무의 어린 잎·순을 의미한다. 어릴 적 고추장에 저민 가죽나물의 맛과 향이 너무 오묘해서, 흰밥이 절로 목구멍으로 넘어 갔었다. 가죽나물은 지역에 따라 참죽나물·쭉나물이라고도 불린다.
16세기 후반 임진왜란(1592~1598년)을 전후하여, 고추가 조선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15세기 말 고추는 원산지(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인도-일본을 거치면서 조선으로 전파되었다. 1614년 허균의 저서 지봉유설에서는 고추가 일본을 통해 전래되었다는 기록을 담고 있다. 조선시대 고초(苦草)라고 불렸던 고추는 남만초(南蠻草)·왜겨자(倭芥子)로도 불렸는데, 이는 남방(일본)을 통해 유입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반도에서 김치에 고추가루가 사용된 시기도 17세기 이후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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