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동산·금융투자

점점 존재감 잃어가는, 입주장

by Spacewizard 2024. 11. 16.
반응형

서울주택시장을 10년 이상 꾸준히 지켜봐 왔다면, 과거 대단지 아파트의 입주를 앞두고 「입주장 효과」라는 것을 보아 왔을 것이다. 대단지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전·월세 매물이 급증하면서 주변의 전세가격 매매가격이 내려가는 현상을 말하는데, 학습효과로 입주 전에 가격조정을 기대하는 수요가 존재해 왔다. 이는 입주 전 중도금·잔금마련을 위해 분양권·입주권이 대량으로 풀렸기 때문이다. 보통은 전세보증금만으로 중도금·잔금을 완납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 취업 첫해였던 2007년 잠실 엘리트가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불황에 닥친 물량폭탄, 엘리트

 

2000년대 들어 주택시장 호황이 이어지면서 정비사업이 박차를 가했는데, 문제는 입주시기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출회된 대량의 입주물량은 전세가격·매매가격가 대폭 하락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07~2008년 입주한 잠실주공 1~3단지 재건축으로, 현재의 엘·리·트(엘스·리센츠·트리지움)이다.

 

2006년 12월 입주: 레이크팰리스(2,678가구)

2007년 8월 : 트리지움(3,696)

2008년 7월 : 리센츠(5,563)

2008년 8월 : 파크리오(6,864)

2008년 9월 : 엘스(5,678)

 

입주 당시 리센츠 전세가격(전용 84㎡)이 2억원 중반까지 떨어졌는데, 매매가격은 8~9억원이었다. 그나마 전세가격은 금방 상승했지만, 매매가격은 2015년 하반기에서야 11억원 수준까지 올라왔다. 송파구 전체는 2017년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으니, 잠실의 물량폭탄은 서울 동남권 일대 전반에 악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점점 희미해지는, 입주장 효과

 

엘·리·트 사태 후 10여년이 지난 2018년 12월, 가락시영 재건축(9,510가구, 현 헬리오시티)의 입주는 엘·리·트의 트라우마를 소환하기 충분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8·2대책을 통해 서울 전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는 한편, 2018년에는 9·13대책을 통해 유주택자의 대출규제를 실시했다. 이전 글 <다시 찾아온 자산사이클, 금리인하>에서는 2017~2020년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주요 부동산대책에 대해서 언급했었다.

 

정부의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 중에 입주를 시작한 헬리오시티도 워낙 큰 물량으로 인해 전세가격·매매가격이 크게 하락했지만, 시세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10년 전에 비해 다소 미미한 입주장 효과를 보여줬다. 그 배경에는 서울아파트 공급부족과 풍부한 시장유동성이 있었으며, 또 하나로는 규제(전매제한, 실거주의무)의 영향이 컸다. 이후 2023년 입주한 개포동 주공 재건축에서도 입주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실수요자들을 실망시켰다.

 

갯펄에서 부촌으로 변한, 개포동

 

개포동(開浦洞)대모산 아래 갯벌이 있던 자리로, 음변화(갯펄-개패-개포)가 지역명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제대로된 수리시설이 갖춰지지 않았던 과거의 개포는 거주·왕래가 거의 없던 공간이었다. ​1970년대 대규모 서민주거단지 공급을 목표로 한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하였으나, 이내 발생한 오일쇼크로 사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그러다 1980년 택지개발촉진법이 제정되면서, 정부 주도의 공영개발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개포동은 서민을 위한 주공아파트(5층 이하, 초소형)로 들어찼고, 다른 강남권과 달리 서민거주지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강북에 있던 명문고등학교들이 강남으로 이전했는데, 이렇게 형성된 강남8학군이 강남주택가격을 크게 올렸다. 개포택지지구 내로 경기여고·숙명여고·중동고가 이전하였고, 대치동 학원가도 가까이 위치하여 개포동 일대의 아파트가격도 크게 상승했다. ​하지만 초소형의 주공아파트가 주변의 생활인프라를 따라가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개포동 주공아파트는 1990년대 말부터 재건축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2003년까지는 재건축이 가능한 연한이 20년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울시가 재건축 연한을 늘리고 안전진단을 강화하게 되는데, 이는 당시 과열되던 개포동 재건축 논의를 진정시키기 위한 조치였다는 후문이 있다. 2024년 현재 거의 마무리되어 가는 개포동 재건축은 다음과 같다.

개포지구 재건축 단지명 [출처:리얼캐스트]

0기 신도시의 등장, 택지개발촉진법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부는 정권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 무엇보다 필요했던 조치는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건설경기 침체를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이에 대규모 택지개발·주택공급을 담은 「주택 500만호 건설」을 발표하였는데, 11년(1981~1991년) 동안 주택 500만호를 공급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1980년 전국 주택수가 530만호 가량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실적인 정책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1980년 12월 500만호 건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정한 법이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이다.

 

택촉법은 공적주체(한국토지개발공사·대한주택공사)가 대규모 토지를 저렴하게 확보한 후 신속한 개발을 가능케 하였는데, 이는 도시계획에서 적용되는 19개의 법률이 규정한 결정·인허가·면허 등의 권한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2개의 공사는 도시계획구역 내 저렴한 녹지지역(녹지·농지)를 개발예정구역으로 지정·매수한 후, 용도를 주거지로의 변경하여 큰 이익을 남기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이전의 토지구획정리사업과 비교하면, 택촉법이 사업추진 이후의 개발이익을 공유화한 면도 있다.

 

택촉법으로 개발된 대표적인 지역으로는 개발제한구역 내의 개포지구·고덕지구·목동지구·상계지구·중계지구가 있는데, 택촉법의 첫 사례는 1981년 준공된 개포주공아파트였다. 이들 지역은 낮은 인구밀도로 인해 대규모 개발에 용이했을 뿐만 아니라, 비만 오면 물에 잠기는 상습침수구역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당시 양재천·안양천·중랑천 주변으로는 천변을 따라 판자촌이 늘어서 있었다. 1987년까지 택지개발을 통해 공급된 주택수가 176만호 가량이었다니, 전두한 정부의 주거안정 노력은 높이 산다.

 

때를 놓친, 아파트가격

 

2024년 11월 올림픽파크포레온(1.2만 가구)의 입주를 앞두고, 아직까지 입주장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만 전세물건의 조건에 따라 이중가격이 확연하다. 대출이 없는 정상물건(전세대출·계약갱신청구 가능)은 전세가격의 상단에 위치하지만, 임대인의 대출이 깔린 물건은 하단에 있다. 일반분양물건·조합원매물 간의 가격차이도 뚜렷한데, 조합원물건의 전세가격이 일반분양물건보다 높은 상태이다. 이는 4년 거주(갱신권 행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2022년 말 1순위 청약이 진행된 이후, 분양권 전매제한은 풀렸으나 실거주 요건은 「폐지」가 아닌 「3년 유예」되었다. 이는 실거주가 당장 어려운 수분양자에게 임대할 시간을 준 것이므로, 대출규제와 함께 전세가격을 낮추는 요인이 된다. 하지만 매매가격은 보합(내지 우상향)할 가능성도 있다.

 

작년부터 계속해서 말해왔지만, 현시점에서 주택시장의 공급부족은 현재진행형이면서 계속 커져가는 위험이다. 특히 수요가 탄탄한 서울·수도권에서는 공급부족이 가격에 미치는 민감도가 더 크다. 향후 주택가격의 대세상승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이유로는 다음의 요인이 있다.

 

다주택자 소멸 → 똘똘한 한채

수요억제대책 한계

신축 선호

 

과거 대규모 재건축 입주를 앞둔 시점에는 주택가격(전세가·매매가)의 변동성이 매우 컸는데, 이는 다주택자의 의사결정 행태가 미친 영향이었다. 이전 글 <아직까지는 안정적이지 않다는, 스테이블코인>에서는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에서 유동성공급자(LP)가 거래가 이뤄질 수 있는 자본을 제공한다고 언급했었다. 과거 다주택자(특히 3주택 이상)는 증권시장·가상화폐시장의 유동성공급자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주택가격이 떨어지면(내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지면 물건을 쉽게 던졌고, 주택가격이 오르면(내지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 물건을 거침없이 주워담았다. 이는 다주택자가 주택수급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시장가격의 탄력성을 높인 것이다. 물론 탄력성을 변동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주택자를 불안·부정의 이미지로 여기면서 「다주택자의 악마화」에 동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시장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감정적인 대처보다는 합리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유도한 「똘똘한 한채」정책은 2024년 시점에서 다주택자의 씨를 말렸는데, 그 결과 주택의 단기수급에 따른 가격탄력성이 없어졌다. 마치 늘어난 고무줄 마냥 가격변화가 느슨하다. 1주택자(실거주자)는 시장에 잉여주택을 내놓을 수가 없기에, 대량입주를 앞두고도 과거처럼 전세가·매매가 변동(급락)이 없게 된다. 다주택자는 오로지 경제논리로 움직이겠지만, 1주택자(실거주자)는 경제논리에서 다소 어긋나는 결정을 할 수도 있다. 보유주택이 투자자산이 아닌 거주자산이기 때문이다.

 

이전 글 <다시 찾아온 자산사이클, 금리인하>에서는 역대 정부들의 수요억제대책이 의도한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언급했었다. 무주택자는 주택가격 하락만을 바라보며 수요억제대책을 지지할 수 있겠지만, 은행은 이자를 끌어올리고 대출총량을 낮추라는 정부권고를 무한정 실행하기 어렵다. 은행도 대출이자(수익)을 창출해야지만, 예금이자(비용)를 지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주택가격을 잡겠다고, 은행위기를 초래할 생각은 전혀 없을 것이다. 이는 금감원장의 빠른 사과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草家三間, 3칸 초가) 다 태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입주장 효과는 경제학의 기본인 수요·공급에 의해 작동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정부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잡아채려 함으로써 가격(수급의 결과값)은 왜곡될 가능성이 커졌다. 향후 대량입주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는 잠복되어 있던 공급부족이 이빨을 드러낼 것이며, 마침 그 때가 상반기라면 그 이빨은 더 날카로워 질 것이다. 은행은 상반기에 적극적인 대출활동을 펼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