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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

[역사/절기] 차문화에서 시작된, 차례

by Spacewizard 2023.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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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의 연말 관심사 중에 하나는 다음해 공휴일과 그에 따른 연휴 가능성인데, 이러한 관심에 부응하듯 많은 기사들에서도 다음해(심지어는 향후 몇년) 공휴일·연휴에 대한 분석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공휴일 중에서도 명절인 구정·추석이 가장 관심이 많은데, 명절 전날과 다음날을 포함한 3일 연휴가 주말·정식공휴일·대체공휴일 등으로 인해 장기연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의 명절은 명절 그 자체의 의미보다는, 휴일로써의 의미가 더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980년대 유년기에는 구정·추석에 할머니댁에 가는 것이 매우 흥분되는 일이었다. 일단 맛있는 것을 다채롭게 많이 먹을 수 있었고, 집안의 장손을 반갑게 맞아주는 집안어른들의 모습과 함께 두둑한 용돈이 기대되었던 것 같다. 추석이면 할머니께서 손수 커다란 콩이 들어간 하얀 송편을 빚으셨는데, 성인주먹 크기의 투박한 송편을 나이 수 만큼 먹어라고 권했던 기억이 남는다. 요즘처럼 달달한 내용물이 아니라서 아이들이 좋아할 맛은 아니었지만, 쫀득쫀득한 쌀반죽이 중독성이 있었다. 그리고 어르신들은 다음과 같은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마치 한가위가 연중 최고의 날이라는 의미로 들렸는데, 한가위라는 단어가 생소하여 선뜻 다가오지는 않았던 말이었다. 현재의 추석은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차례예식과 신라의 가윗날 축제가 합쳐져서 전승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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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넘어 온, 차문화

 

최치원이 찬술한 국보 제46호(지리산쌍계사진감선사대공영탑비명)에 따르면, 쌍계사(지리산)의 진감국사가 차를 한반도에 가장 먼저 전래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리산 근처에는 하동녹차가 유명하다. 하지만 1,000년도 더 지난 기록이기에, 신빙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진감국사 이전에도 차에 관한 추측은 많다.

 

보천·효명은 신문왕(신라 제32대)의 아들로, 왕위계승 과정에서 밀려나 오대산(강원도 평창군)에 은거했었다. 은거 중에 5만의 불보살이 출현하는 기이한 경험을 한 후, 매일 아침 차공양을 올렸다고 한다. 이러한 공덕 덕분인지, 효명은 성덕대왕(신라 제34대)에 등극하게 된다. 당나라에서는 불교의 영향으로 술 보다는 차를 즐기는 문화가 있었고, 이렇게 생겨난 곳이 다방(茶房)이다. 당시 차문화는 큰 솥에 끓여서 국자로 퍼 먹었는 방식이었는데, 그래서 찻잔의 폭도 넓어야 했다. 이렇게 폭이 큰 찻잔을 다완(茶房)이라고 한다. 751년 준공된 석굴암에는 문수보살상이 있는데, 다완을 쥐고 앉아 있다.

석굴암 문수보살상

차를 올리는 예식, 차례

 

차례(茶禮, 차를 올리는 예, 다례)는 불교에서 비롯된 의식으로, 원래 삼국시대부터 사시제에 차를 올리던 예식이었다. 사시제(四時祭)는 사계절의 중월(仲月, 음력 2월·5월·8월·11월)에 길일을 잡아서 집안(사당)이나 사찰에서 조상(고조부~부모) 및 부처·보살에게 공양하는 제례의식이다.

 

차례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에 실린 충담스님의 일화이다. 신라 경덕왕은 고승을 초청하여 조언을 구하는 것을 즐겼는데, 어느 날 대신들로부터 충담스님을 추천받는다. 충담은 찬기파랑가(화랑 기파랑을 찬양하는 노래)를 지은 스님이었는데, 그의 거처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경덕왕이 남산 나들이에서 돌아오는 길에 월정교 누각에서 잠시 쉬고 있었는데, 마침 허름한 옷을 걸친 한 스님이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범상치 않음을 느낀 경덕왕은 그를 불러 대화하는 과정에서 충담임을 직감했다고 한다.

 

충담은 매년 삼짇날(3월 3일)과 중양절(9월 9일)에는 남산 미륵세존에게 차를 공양하였는데, 마침 경덕왕과 마주친 때가 미륵세존에게 차를 공양하고 하산하는 길이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봄·가을에 경주에서는 충담재를 개최하고, 남산 삼화령을 찾아 차공양의식을 재현하고 있다. 공양(供養)불교에서 귀히 여기는 삼보(三寶, 3가지 보물, 불법승)에 정성을 담아 공양물을 올리는 의식으로, 이는 자기 마음 속에 숨겨진 부처의 성품을 기르는 공부법 중의 하나이다. 참고로 불법승(佛法僧)과 삼보사찰은 다음과 같다. 

 

불보(佛寶, 양산 통보사) : 부처

법보(法寶, 합천 해인사) : 부처의 가르침

승보(僧寶, 순천 송광사) : 부처의 제자(스님)

 

차 솜씨로 평가받던, 며느리

 

육법공양에 해당하는 6가지의 공양물(향·등/초·꽃·과일·차·쌀)은 각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 중 감로다(甘露茶, 차)는 부처의 법문이 만족스럽고 청량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고려시대에는 새며느리를 맞으면,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에서 집안어른들이 참석한 가운데 며느리가 절을 올렸다. 이 때 며느리는 직접 달인 차를 조상들께 올렸고, 절이 끝나면 가족들이 모여 앉아 며느리가 달인 차를 나눠 마시면서 차의 빛깔·맛·향기를 통해 며느리의 사람됨을 평가했다고 한다. 이는 제사가 끝난 후 제사음식을 나눠 먹는 음복(飮福)과 유사하다.

 

며느리의 어원과 관련된 유력설은 메(제삿밥)와 나리(나르는)의 합성어로, 과거 제사를 모시거나 음식을 주로 담당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조선후기 문헌에는 며느리가 메나리·며나리로 기록되어 있다. 주희(주자)의 저서 가례에는 정지삭망참(正至朔望參)이라 하여 다음의 날에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에 참배한다고 나와있다.

 

정월초하루

동지

매월 초하루

매월 보름 : 차만 올림

 

이 때 주인은 술을 올리는 반면, 주부(또는 맏며느리·맏딸)는 차를 올렸다. 다만 매월 보름에는 술 대신 차만 올리는 간략한 제례를 올렸다고 한다. 이러한 차만 올리는 간단한 제례가 한반도로 넘어오면서 차례가 유래된 것으로 본다. 조선전기까지는 중국처럼 차를 제사상에 올렸지만, 임진왜란 이후 차 대신에 술·숭늉(뜨거운 물)을 차례상에 사용했다. 이는 차 도자기를 만들던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면서, 차가 귀하고 비싼 기호식품으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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